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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pr 20. 2017

시차(時差)

시간은 동에서 서로 흐른다. 무형의 개념인 시간에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고, 그로 인해 동쪽에서 아침이 먼저 시작하는 탓이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생활하는 인간의 속성상 생체의 모든 리듬도 해에 맞춰져 진화해왔다. 


그런 진화의 결과물이 멜라토닌이라는 수면유도 호르몬이다. 햇빛에 노출되는 낮에 뇌 속에서 생성된 멜라토닌은 어두워진 후에 분비되어 인간이 수면을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여행으로 인한 시차도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여행보다는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인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그런 논리라면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것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시차극복에 어려움이 있다.


과거 미국으로 출장을 가면 호텔에서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낮에는 극심한 피로와 함께 일을 하느라고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상대회사와 미팅을 할 때는 정신 차리느라 허벅지를 꼬집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2주를 고생하다 시차에 적응할 때쯤 되면 귀국할 시간이었다.


미국에 온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아직도 시차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 시차 적응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맥주와 같은 음료다. 한국에서는 거의 마시지 않는 맥주를 이곳에서는 자주 접한다. 특히 저녁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자연스럽게 아이도 나도 맥주병을 손에 든다.


더군다나 요즘 이곳에 유행한다는 하우스 맥주는 맛이 꽤 괜찮다. 문제는 잠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변 때문에 자다가 한두 번 일어나야 하는 문제가 있는 데다가 시차와 더불어 맥주까지 마셨으니 한두 번이 아니라 서너 번을 깨는 통에 숙면이 불가능하다.


12시나 한 시에 깨어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다시 잠이 들어 뉴욕으로 일찍 출근하는 아이들을 못 보는 경우도 생긴다. 점심을 먹고 나면 눈이 뻑뻑하고 밀려오는 졸음을 참느라 하품이 연신 나온다. 대화에 집중하기도 힘들어서 방금 들은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아 되물어야 하고,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쏟아지는 졸음을 참느라 서있어야 한다. 때로는 혀가 헛돌아 발음도 불분명해진다.


미국으로 가든지 한국으로 오든지 시차를 모르거나 덜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다. 신체리듬과 호르몬 생성작용이 뛰어난 분들이다. 시간과 관계없이 낮에는 멜라토닌이 만들어지고, 생성된 호르몬이 정확하게 작동하는 신체리듬을 갖고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그런 분들을 보면 부럽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야말로 건강의 기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기본에 충실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혹은 시차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잠을 못 이룬다면 건강에 적신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어쩌랴, 그런 몸을 갖고 태어난 것을.


학생 시절에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있었다면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과 잘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뿐! 옆에서 굿을 하더라도 머리만 기댈 수 있으면 바로 잠들었다. 군대 졸병 시절에는 몇 날 며칠 이어지는 야간훈련 때 걸으면서 잤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신(神)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인간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무언가 한두 가지는 부족하게 만든다. 충분한 시간이 준비되니까 자는 능력을 앗아갔다. 걸으면서도 자는 능력이 있을 때는 잘 시간이 부족했다.


왜 신은 이렇듯 심술궂을까?


불면의 밤에 억지로 잠을 청하며 신에게 불평하다가 문득 신의 음성을 듣는다. 이 멍청한 놈아, 바로 그것이 너 같은 어리석은 놈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나의 섭리 노라!


건강하면 건강의 고마움을 모른다. 건강의 고마움이 가장 간절하게 깨닫는 사람은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다. 모든 게 갖춰진 사람은 부족함도 만족도 모른다. 부족해져야 고마움을 깨닫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신으로부터의 음성은 계속된다. 이놈아, 이제 깨닫느냐? 내가 왜 너의 자는 능력을 가져갔는지를! 바로 네 놈이 행복해지라는 거다,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아!


다섯 시 반이다. 아직 밖은 어둡다. 쿵쿵거리는 계단 소리와 함께 출근 준비를 끝낸 딸내미가 내려온다. “아빠, 오늘도 못 잤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는 잘 능력은 충분한데 잘 시간이 늘 부족하다. 짐(Gym)에 가서 운동한 후에 뉴욕에 있는 회사로 출근한다.


빠른 손길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바나나 한쪽과 오렌지 몇 개를 챙기더니 현관 앞에 놓인 핸드백을 집어 든다. “아빠, 오늘 찰스 아저씨 만나지? 돈 줄까?” 나가는 아이를 따라 컴컴한 새벽의 찬 기운을 느낀다. “찰스 아저씨 만나서 재밌게 놀아요!” 차 속으로 사라지는 아이를 보고 있는데 음성이 다시 들린다.


이놈아, 이제야 깨닫느냐!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를, 네가 얼마나 행복한 놈인지를!


30년 전, 내 부모님도 무심히 출근하는 내 뒷모습을 보며 같은 음성을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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