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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r 18. 2017

영화 'Boyhood'

잔뜩 기대를 갖고 본 유명한 영화가 지루하고 졸리기만 하거나, 별 기대 없이 우연히 본 영화에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TOP 15'에서 5위에 올랐던 보이후드가 그런 영화다. 평범한 텍사스 싱글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사가 러닝타임 2시간 30분이 넘도록 전개되는 내용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이웃 가정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voyeurism) 본능을 충족시켜는 듯한 매력으로 관람자는 곧 지루함을 잊고 빠져들게 된다.


조지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들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형편없는 나라 미국에 대해 대단하다고 감탄사가 나오게 되는 경우는, 그만큼 독창적이고 흔치 않은 생각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 같은 독창적인 인물은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보이후드를 제작하고 감독한 'Richard Linklater'도 비슷한 류의 인물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두 아이의 성장과정을 담아냈다. 1년에 20만 불씩 들여 15분 분량을 촬영하며 메이슨 에반스 주니어(Mason Evans Jr.)라는 여섯 살짜리 소년이 열여덟 살이 되어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과정을, 누나인 사만다와 함께 연출했다. 사만다 역의 로렐라이는 감독의 실제 딸이다.


영화 속의 가정이 미국의 가정을 얼마나 대표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몸만 어른인 채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20대 초반에 두 아이를 갖고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가정사를 담담하게 표현했다고 느껴졌다. 건달이나 다름없는 메이슨의 생부와 헤어져 어렵게 두 아이를 키우던 올리비아는 더 나은 수입을 위해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휴스턴으로 이사한다.


그녀는 휴스턴의 대학교수와 재혼하고 메이슨과 사만다 오누이는 그 집의 남매와 가족이 되지만, 알콜릭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의붓아빠를 피해 또다시 생소한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게 된다. 엄마의 재혼과 이혼, 또 다른 결혼과 이혼으로 이어지면서 아이들 역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텍사스의 이곳저곳으로 전학 다닌다. 그러는 동안에도 생부와의 만남도 꾸준히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평범한 모습 - 그러나 철부지였을 때는 경멸했던 -으로 변해가는 메이슨 시니어도 재혼해서 메이슨의 동생이 생기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싱글모로서 억척으로 살며 대학교수가 된 올리비아는 메이슨마저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자 인생의 허무함에 오열한다. 


메이슨은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아이로 자라는 동안,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몰래 포르노도 보고 술도 마시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자를 사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발견한 대학생이 된다. 물론 이민자로 보는 시각은 약간 달랐다. 아시안 이민자의 아이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듯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토리가 흥행에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영화 평론가들에 의해 2015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이유는 무얼까. '메타크리틱'이라는 전문가 평가에서 100점을 받은 영화는, 역사상 '보이후드'와 '대부'뿐이라고 한다. 국내 기자,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8명 전문가 평균 평점 9.5점으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을 받았다. 이 정도면 영화 역사상 평단으로부터 가장 극찬을 받은 작품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국내 영화평론가의 평 보기)


그 이유가 진실함에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도 없고 과장도 없으며, 영웅이나 비범한 인물은 물론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소소한 사연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관음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그래서 들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도 이런 류의 이야기에 비슷한 감동을 받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이것도 나이 탓일지 모른다. 스타워즈나 슈퍼맨 같은 SF영화는 아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된 액션이나 허무맹랑한 폭력으로 일관하는 중국 영화나 무술영화류도 취미를 잃은 지 오래다. 말 같지 않은 이야기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까워서 그럴까. 그보다는 이렇듯 사실적인 스토리에 어떤 위로를 받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런 류의 영화가 위안을 주는 이유는 뭘까. 혹시 내가 살아온 지난 과정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탓은 아닐까?


▼ 여섯 살짜리 메이슨이 열여덟 살까지 자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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