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 성취를 넘어 내면의 밀도 채우기
“The soul that is entertained in itself, and that has the means to maintain itself, is happy; for it is the theater of its own content.”— Charles Cotton, The Essays of Montaigne
“자신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그 영혼은 자기 스스로 만족을 누리는 극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박수를 받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성과, 자리, 숫자, 타이틀.
눈에 보이는 결과가 곧 나의 가치라고 믿었습니다.
누군가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안심했고
칭찬이 들려올 때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박수는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잠시 울렸다가 금세 잦아듭니다.
박수 소리가 멈추면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남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았는데
마음 한쪽은 이상하게 비어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더 큰 성취로 채우려 합니다.
더 많은 인정, 더 큰 자리, 나를 보여 줄 무언가.
그러나 오십이 되면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조용히 있어도 괜찮은 사람인가.
몽테뉴는 세상의 박수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직과 명예를 뒤로하고 물러났습니다.
대신 자기 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채우는 시간을 택했습니다.
누군가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행복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안에서 흐르는 평온이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박수가 나를 증명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박수가 멈춰도 괜찮은 사람.
조용한 방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런 단단함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숨소리를 들을 때 생깁니다.
오십 이후의 삶은
더 많은 박수를 받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성취가 사라져도
자리가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당신을 설명해 줄 소리가 없어도 당신의 하루는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많은 시간을 살아낸 사람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박수보다 당신의 숨이 고른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내면의 밀도 채우기]
일부러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 보십시오.
하루 중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당신의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합니다.
하루에 몇 번, 숨을 느껴 보십시오.
급하게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지금 숨이 가쁜지, 차분한지 살펴보십시오.
숨이 고르게 돌아오면 마음도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당신의 숨이 삶의 리듬을 정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