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만나는 진짜 인연

사회적 직함이 아닌 본연의 이름으로 마주하기

by 두콩아빠

“I can carry the city of Bordeaux on my shoulders, but I have no intention of putting it into my liver or lungs. We must remember that the Mayor and Montaigne are always two different people.” — Charles Cotton, The Essays of Montaigne


“나는 보르도라는 도시를 어깨에 짊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 삶 속까지 들여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시장이라는 직책과 몽테뉴라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명함으로 자신을 설명하는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어디의 누구인지,

어떤 직함을 가졌는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그 한 장의 종이는

나를 빠르게 이해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명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 서게 되면

묘한 공기가 흐릅니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소개되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나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직함은 관계를 쉽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깊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직함이 주는 거리 안에서만 관계를 맺습니다.

그 직함이 사라지면 많은 이들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몽테뉴는 시장이라는 공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넘어서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적 책임을 다했지만,

그 책임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정의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십 이후의 삶은

역할과 나를 구분하는 연습에서 시작됩니다.


직함은 사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퇴임, 이직, 은퇴

혹은 예상치 못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그 한 장의 종이 없이 서게 됩니다.


직함이 사라져도 여전히 곁에 남는 사람.

직책을 묻지 않고

오늘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

이들이 당신의 진짜 인연입니다.


명함이 사라진 자리는 공백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이제는 어디의 누구로 소개되기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직함은 잠시 맡는 것이지만

이름은 끝까지 남습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이름으로 만나는 연습]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직함보다 먼저 당신의 관심을 말해 보십시오.

요즘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어떤 문장이 오래 남았는지.

직함 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처음엔 어색하지만 오래 갑니다.


가끔은 아무도 당신의 이력을 모르는 자리에 가 보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은 설명할 것이 줄어들고 존재할 시간이 늘어납니다.

이름으로 시작된 관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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