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결심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is for a man to know how to be his own.”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어떻게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 거대한 무대 위에서 보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유능한 리더로, 또 누군가에게는 헌신적인 부모나 예의 바른 이웃으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왔죠. 특히 사회적 책임이 정점에 달하는 오십 대에게 ‘평판’은 곧 나의 성적표이자 포기할 수 없는 자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근사한 칭찬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온 보이지 않는 댓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와 영혼의 휴식이었습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제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브랜드 이미지가 아무리 화려해도 기업 내부의 건전성이 무너지면 결국 그 기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남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 내면의 에너지를 무리하게 끌어다 쓰는 행위는, 당장의 평판이라는 과실을 위해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고금리 대출을 받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 인생을 책임지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외부의 평가보다 내면의 ‘실질적인 평온’에 더 집중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16세기의 현자 몽테뉴는 남들의 시선에 갇혀 사는 삶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공적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본질을 희생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죠. 몽테뉴는 보르도 시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면서도 “보르도 시장과 몽테뉴는 언제나 별개였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시장으로서의 역할(외면)은 충실히 수행하되, 그 역할이 자신의 영혼(진짜 나)까지 침범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오직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한 뒷방으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이제 오십이라는 나이는 세상이 나에게 매긴 점수판을 과감히 내려놓고, 내가 나에게 매기는 만족도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타인에게 상냥하기 위해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혹하고 불친절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가장 큰 배신이기도 하니까요. ‘좋은 사람’이라는 감옥의 창살은 타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우리 자신의 강박이 만든 것입니다. 그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며, 그 열쇠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내 마음의 결정’에서 나옵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처음에는 두렵고 미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단단하게 서 있지 않으면, 결국 타인에게 나누어줄 다정함조차 금방 바닥나고 맙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피는 시간을 늘려보세요. 그것은 결코 이기적인 배신이 아니라, 당신이 비로소 당신 인생의 경영권을 타인에게서 되찾아왔다는 가장 건강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영혼의 뒷방]
사회적 미소의 빈도를 조금만 줄여보세요.
모든 자리에서 친절하려 애쓰는 대신, 내 마음이 지쳤을 때는 정중한 침묵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갑자기 무뚝뚝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내면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억지로 짜내어 웃을 필요 없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기로 ‘결정’한 것뿐입니다.
‘잊혀질 권리’를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세요.
내가 없으면 세상이 멈출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주 잘 돌아갑니다. 이 사실은 때로 서글프게 들릴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해방감을 주기도 하죠. 타인의 기억 속에 완벽한 존재로 남아야 한다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 던질 때, 비로소 진짜 당신만의 시간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