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순과 서투름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나

by 두콩아빠

“We are all of patches, and so shapeless and diverse in context, that every piece, every moment, plays his own game.”


“우리는 모두 조각들로 기워져 있으며, 그 맥락이 너무나 형체 없고 다양하여 조각 하나하나, 순간순간이 저마다의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리더의 ‘일관성’은 곧 신뢰의 상징이었습니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면 조직은 흔들렸고, 확신에 차지 않은 서투른 모습은 리더십의 결격 사유로 여겨지곤 했지요. 저 역시 언제나 정답만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았습니다. 감정의 동요를 들키지 않으려 표정을 관리하고, 모든 지표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무결점 경영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 안의 모순과 서투름은 해결되지 못한 채 가슴 깊은 곳에 쌓여만 갔습니다.


오십이라는 나이를 지나며 제가 깨달은 인생의 진실은, 우리 인간은 애당초 일관된 하나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몽테뉴는 인간을 가리켜 ‘조각조각 기워진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침의 마음과 저녁의 마음이 다르고, 이성적인 판단 뒤에 유치한 질투가 숨어 있으며, 대담한 결단력 뒤에 소심한 겁쟁이가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본모습이라는 것이죠. 몽테뉴는 이러한 자기 안의 모순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변덕스럽고 일렁이는 모습 자체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경영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리스크 관리는 위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수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허상을 세워두고 그 틀에 자신을 맞추려다 보면, 기준에서 벗어난 나의 서투른 모습들은 모두 ‘실패’나 ‘오점’으로 처리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안의 모순들을 인생이라는 포트폴리오의 다양한 구성 요소로 인정해 주면 어떨까요? 계획을 세웠지만 작심삼일에 그치는 나, 타인에게 관대하려 노력하지만 가끔 속 좁은 생각이 드는 나조차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서투름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는 타인에게 더 넓은 가슴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인정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러운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이라는 가면을 벗고 나의 모순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내 마음의 결정권’을 행사하여 자책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오십 이후의 삶은 더 이상 1등을 다투는 경기장이 아닙니다.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도 아니지요. 그저 조각조각 기워진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서툰 바느질 자국조차 나만의 고유한 무늬로 받아들이는 여정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당신 인생의 주인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가장 관대한 주인이 되어, 당신의 모든 서투름에 따뜻한 지지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영혼의 뒷방]


자신의 서투름을 ‘투자 비용’으로 생각해 보세요.


실수를 하거나 모순된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을 비난하기보다, 더 나은 나를 알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 비용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영자에게 실패는 경험이 되듯, 당신의 서투름 역시 당신이라는 브랜드를 더 인간미 있게 만드는 귀한 재료가 됩니다.


‘오늘의 나’에게 일임하세요.


어제의 계획과 오늘의 마음이 다르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수정하는 ‘피벗(Pivot)’은 훌륭한 자질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과 욕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연습을 하세요. 당신의 모순된 조각들이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만의 삶이라는 예술작품을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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