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선으로 내 삶을 다시 바라보기

익숙함을 의심하는 연습

by 두콩아빠

“I turn my sight inward, and there fix and employ it. Every one looks before him, I look into myself; I have no other business but myself.” — Charles Cotton, The Essays of Montaigne


“나는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린다. 다른 이들이 앞을 바라볼 때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나에게는 나 자신을 살피는 일 외에 다른 일이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깥을 향해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앞으로 무엇이 올지를 예측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작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남의 일에는 날카로운 판단을 하면서도 내 습관과 내 선택에는 쉽게 익숙해집니다.

오래 해왔다는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나를 설명하고 넘어가 버립니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이제 나를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나를 잘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한 선택에는 언제나 사정이 붙고, 내가 반복하는 행동에는 이유가 덧붙습니다.

그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설명에만 머물면

새로운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몽테뉴는 평생 자신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확신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그 질문을 붙들고 자기 생각이 바뀌는 과정까지도 기록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너무 믿지도, 너무 몰아붙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낯선 사람을 보듯 차분히 바라보았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그렇게 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오늘 처음 이 사람을 만났다면 이 사람을 어떻게 볼까?”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에 쉽게 화를 내는가.

나는 무엇 앞에서 작아지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편안해지는가.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습관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꼭 붙들고 있던 생각이 사실은 오래된 두려움이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나를 이방인처럼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부정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정확히 이해해 보겠다는 태도입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초점이 흐려집니다.

한 발짝 물러서야 전체 모습이 보입니다.


오십 이후의 삶은

계속 앞으로만 달려가는 시간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지금의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함에 기대어 흘러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를 흔들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질문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나도 아니고,

내가 믿고 싶었던 나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있는 나.


그 사람을 조용히 마주할 수 있을 때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 더 또렷해집니다.


[아리에르 부티크 : 낯선 눈으로 나를 관찰하기]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하루 중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두고 오늘 하루의 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순간에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어떤 말에 괜히 예민해졌는지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기록은 나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낯선 공간에 나를 놓아 보십시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장소에 앉아 지금의 나를 바라보십시오.

“저 사람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

“저 사람은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익숙함 속에 가려졌던 마음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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