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하천: 물 위에 비친 계절의 얼굴들
집 앞을 따라 흐르던 하천, 반석천.
그 천은 내 어린 날의 사계절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작은 우주였다.
여름이면 그곳은 자연이 만든 수영장이 되었다.
제방 아래 1.5미터 남짓 모인 물은 놀기에 딱 좋았고,
온 동네 아이들이 튜브를 끼고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수영을 잘 못하던 나는 언제나 몸에 튜브를 껴안고 물속을 휘저으며 깔깔 웃었다.
물살이 제법 센 날이면 어른들이 하류 쪽에 줄을 쳐 우리를 보호해 주었고, 장마로 물이 불어난 날엔 수영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조차도 잠깐의 서운함일 뿐,
우리에게 반석천은 늘 반가운 놀이터였다.
겨울이 오면 천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물이 얇게 얼면 썰매며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천연 빙상장이 되었다. 물론 진짜 스케이트는 아니었다.
신발 바닥에 과자봉지를 붙여 미끄러지듯 달리던 놀이였지만, 그 위에서 나는 세계적인 선수가 된 양 폼을 잡았다. 친구들과 함께 맴돌며 웃음꽃을 피우던 그 시간들은 겨울 햇살 속에서 반짝이며 아직도 마음에 얼어 있다.
봄이면 천가에 자라나는 돌나물을 땄다.
그 풀을 들고 집에 가면 엄마는 말없이 그것을 정성껏 다듬어 고추장과 식초, 설탕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밥 한 그릇을 뚝딱하게 해 주셨다.
입안에 퍼지던 봄의 향, 돌나물 너머로 엄마의 손맛이 느껴졌다. 그땐, 내가 직접 따온 나물이라는 자부심이 무엇보다도 밥맛을 좋게 했던 것 같다.
가을은 아빠의 계절이었다.
물이 잔잔해진 천에서는 미꾸라지가 잡혔고,
아빠는 그 미꾸라지를 튀김으로 만들어 식탁에 내놓으셨다. 막 잡아 올린 통통한 미꾸라지를 재빠르게 손질해 노릇 하게 튀긴 그 맛은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 튀김 너머의 아빠 미소까지 그날의 풍경이 통째로 떠오른다.
이제 반석천은 많이 달라졌다.
정비가 잘된 산책길, 깔끔한 제방, 벤치와 조명, 그리고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 더 이상 수영도, 썰매도, 미꾸라지 잡이도 없지만, 여전히 그 천은 사람들을 품는다.
걷는 이의 발걸음에 따라 물소리가 장단을 맞추고, 멈춰 선 자리엔 바람이 기억을 건드린다.
천은 흘렀고, 나도 자랐다. 하지만 마음속 반석천은 여전히 그 시절의 파란 여름, 하얀 겨울, 풀내음 가득한 봄, 튀김 냄새 진한 가을을 품고 있다. 그건 물이 머무르지 않고 흐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고, 흘러서, 우리 마음 어딘가에 깊숙이 스며드는 것.
그렇게 반석천은 지금도 내 삶 한가운데를 조용히 흘러간다.
현재 반석천의 모습 오른쪽이 1.5m 제방이 있던 자리로 한창 공사 중이다.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까?
대전의 하천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다.
그건 도시의 숨결이고,
사람들의 기억이며,
우리 삶의 조각들이다.
물소리 따라 걷다 보면 그 풍경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오래된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대전의 3대 하천
01. 갑천 (甲川)
대둔산에서 내려온 물길은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금강으로 스민다. 자연성이 높아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이름을 올렸고, 내륙 습지보호지역으로도 지정되었다.
월평공원 인근에서는 여울과 습지가 맞물려 걷는 이와 자전거 타는 이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만난다.
곧 문을 열 준비를 하는 생태호수공원까지 더해지면 이물길의 표정은 한층 넓어질 것이다.
*길이:약 74km
*흐름:대둔산->대전 도심 ->금강
02. 대전천 (大田川)
만인산에서 내려온 물길은 골목과 다리를 지나 도심 속을 오래 흐른다. 예전의 콘크리트 제방은 한층 완만해졌고, 그 자리에 사람 걷는 길과 자전거 길이 이어졌다. 목척교 부근이 환해지면서 하천은 다시 일상으로 가까워졌다. 유등천, 갑천과 나란히 대전을 지탱하는 세 물줄기 가운데 하나다.
*길이: 약 26km (대부분 도심 구간)
*흐름: 동구 하소동 만인산 자락->대전 구도심 관통 ->유등천과 합류
03. 유등천 (柳等川)
대전의 길을 걷다 보면, 버드나무가 물 위로 늘어진 고요한 물길이 나온다. 금산에서 시작해 도심을 지나 갑천으로 이어지는 유등천이다.
봄엔 연둣빛 잎이, 여름엔 짙은 그늘이, 가을엔 노란 잎이, 겨울엔 고요한 물결이 사람을 맞는다. 복수교에서 안영교까지는 여울과 산책길이 이어져, 걷는 이와 자전거 타는 이가 함께 풍경을 나눈다.
*길이: 약 44.4km (국가하천 15.5km 포함)
*흐름:침산동 통과 ->삼천동에서 대전천과 합류 ->갑천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