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아날로그 중간은 없다
앨범을 펼친다.
먼지 낀 시간들을 들추듯
오래된 사진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분명 기억에는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인데
그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을까.
어렴풋한 미소, 그날의 옷차림, 함께 웃던 얼굴들
생각해보니 그 사진들은 싸이월드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빠르고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져 현재를 찍고 올리는 일이 너무나 쉬웠다.
쉬운 만큼 가볍게 여겼고, 그래서 더 쉽게 지워버렸다.
사랑이 끝났을 때, 나는 지난 흔적들을 정리하는 것이 이별의 예의인 줄 알았다.
그 사람과 함께한 폴더를 삭제하고 새로운 사랑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려면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을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 시간 속의 ‘나’까지 함께 지워버리는 일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내 청춘의 조각들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지금 남은 건 몇 장의 인화된 사진들뿐이다.
어쩌다 살아남은 정리도 안 된 종이 사진들
그조차도 당시엔 귀찮아서 남긴 것들이었지만
지금 다시 들여다보면 묘하게 따뜻하고 그립다.
반면 디지털 세상에 있던 사진들은 삭제되는 순간
모든것이 끝난다 되살릴 수 없고 찾을 수도 없다.
추억 조차도 되지도 못한 채,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