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첫발을 내딛다
1980년, 대전으로 가는 버스
전북 완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진숙이는 대전에 사는 언니가 첫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에 급히 짐을 챙겼다. 친정집에는 초등학생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 둘이 있어 산후조리는 자연스레 둘째 몫이었다. 그렇게 몇 가지 안 되는 짐을 싸서 대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대전 서부버스터미널에 다다르자 시골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삐 오가고 버스 매연과 먼지가 길거리 공기를 무겁게 감쌌다. 시장 골목마다 튀김 기름 냄새와 얼큰한 국밥 향이 뒤섞이고 꽃가게에서 풍기는 물비린내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대전’이라는 도시는 진숙이에게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졌다.
언니 집에서 보낸 세 달은 숨 가쁘게 지나갔다. 밤낮없이 아기를 안고 빨래를 널고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백 일이 지나자 진숙이는 다시 완주로 내려가 공장 생활에 복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 진숙이 언니 집에 근처에 살던 동네 아주머니가 불쑥 들렀다. “아니 동생은 간겨? 손도 빠르고 싹싹하드만. 내가 거시기 아는 성실한 청년이 있는데 유천동서 꽃가게 하는데 내가 다리 좀 놔줄까?”
타지에서 외롭게 아기를 키우던 언니는 진숙이가 근처에라도 살면 좋겠다 하던 찰나였기에 바로 진숙이에게 이러저러한 상황과 이야기를 건냈다. 몇 달 후 진숙이는 무겁게 짐을 싸가지고 다시 대전으로 올라왔다. 진숙이의 본가에서 바로 대전까지 오는 직행 버스가 있어 대전이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전라도라고는 하나 논산과 금산을 끼고 위치해 충청도의 삶과 더 닿아있는 곳이었다.
진숙이는 마치 상경한 기분이었다. 완주보다 훨씬 큰 도시 사람도 많고 골목마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곳.
마음 한 켠엔 ‘나도 이곳에서 출세할 수 있겠다! 어쩌면 사랑도 가정도 이룰 수 있겠어!’라는 희망과 설렘이 살짝 자리했다. 스무 살 생일 한 달 전, 봄바람이 살랑이던오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