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동 리어카 꽃집

꿈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by 윤덕순

1981년, 유천동 리어카 꽃집

동네 아주머니가 ‘유천동에 꽃 파는 청년’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한 번 가볼까 싶었던 것이 수개월이 걸렸다. 꽃가게라고 해서 화려한 진열장을 기대했지만 그곳은 시장 입구에 한켠에 자리잡은 허름한 판자 하나 세워 만든 가게였다. 그 앞에 리어카 한 대 놓고 천막도 없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리어카 위에 안개꽃, 장미, 카네이션이 종이봉투에 꽂혀 있었다. 청년은 굳은살 박힌 손으로 꽃 줄기를 다듬고 있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소매 끝에 묻은 흙먼지.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진숙이 눈에는 단단하고 믿음직하게 보였다.


결혼식도 생략하고 둘은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고그럴듯한 꽃가게라도 열자라는 목표로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 남편의 여동생이 선언하듯 말했다. “나도 시집갈 거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전 변두리에서 살고 있는 병든 시부모를 모시는 일은 고스란히 진숙이 몫이 됐다. 꽃장사도 접고 들어가야 했던 낯선 동네.


시부모의 병수발은 녹록지 않았다. 하루에 몇 번이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고 게다가 이젠 홀몸도 아니었다.그렇게 진숙이의 대전살이는 시작부터 고단했다. 봄볕보다 꽃향기보다 더 강하게 진숙이의 폐부를 찌른 건 ‘살아내야 한다’는 묵직한 현실의 냄새였다.


바람결에 흔들리면 윤슬이 반짝이듯 곱던 긴 생머리는 싹뚝 잘라 오랫동안 미용실에 갈 일이 없게 동네 아주머니들처럼 볶았다. 어쩌다 가는 미용실에서는 “윤가는 아이구 이렇게 고운 아가씨를 어디서 데리고 와서 이 고생을 시키는겨”라는 동네 사람들의 속닥거림에 참한 인상의 진숙이가 세상 표독스런 얼굴로 “참견 마소!!” 탁 쏘아대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대놓고 진숙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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