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이름은 덕순이
1983년, 덕순이가 태어났다
뱃속에 아기가 생기고 시내에 있는 산부인과를 두어 번 갔을 것이다. 그리고는 못갔다. 표면적으로는 멀어서 못 가겠네 였지만 병원 가는 비용도 그렇고 진숙이가 잠시라도 집을 비워 놓으면 집안 꼴이 난장판이 되기에 그게 더 힘들고 지쳐 어디 나가는 걸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 느낌이 왔다. 오늘 저녁에 아기를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그 길로 뒷집에 사는 순이 할머니를 찾아 산파 역할 좀 해달라 부탁했다. 동네에서 여러 번 애를 받아주셨던 터라 쉽게 승낙을 해주셨다. 이른 밤, 진숙이는 몇 시간의 산고 끝에 덕순이를 품에 안았다. 얼굴이 벌겋도록 울어대는 아기였다.
이 집에서 처음 태어난 아기였다. 늘 시끄럽고 도통 침묵을 모르던 진숙이의 시아버지가 웬일인지 조용했다. 아기를 안은 모습은 마치 귀한 도자기를 끌어안은 모양새였다. 몇 분이 흘렀을까 시아버지가 “야는 복순이여, 암만 이렇게 복덩인데 아! 덕순이도 좋겄고만, 윤덕순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83년 2월생 아기는 윤덕순이 되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신촌상회 앞 첫 번째 전봇대 아래에는 덕순이 할아버지만 앉는 고정 바위가 있었다. 덕순이를 업고, 바위에 앉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덕순이 좀 보소” 하고 자랑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 중 중요한 과업이었다. 등 뒤에 업혔던 덕순이는 어느새 자라 고 작은 손으로 지팡이 대신 할아버지의 걸음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