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이야기

꿈은 이어진다

by 윤덕순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합격 소식을 들은 백희와 명희 다음이 내 차례였다.


공중전화 박스 밖에는 키가 큰 모델 같은 백희와, 예쁘다고 소문난 명희가 재잘거리며 웃고 있었다.

결과를 듣고 난 뒤 나는 수화기를 떨군 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봤다.


합격은 당연한 줄 알았다.

연기학원에서 모집하는 원생 오디션이었고 백 명 중 한두 명만 떨어뜨릴까 말까 한 낮은 경쟁률이었으니 말이다.


오디션 소식을 듣자마자 우린 “합격만 하면 스타가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TV에서만 보던 탤런트 앞에서 연기를 한다니! 설렘과 동시에 누가 알까 셋만 속닥속닥.


대전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친구들이 다 모인 듯 오디션 당일 연기학원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띌 정도였다.


오디션의 개인 과제는 ‘새 신발을 사 달라며 엄마를 설득하는 자녀’였다. 연기의 ‘연’자도 모르던 나는 그저 어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듯 한껏 떼를 쓰다 엄마가 미워 울음까지 보태며 즉흥연기를 이어갔다. 다행히도 내 서툰 연기를 끝까지 함께 받아 준 중년 탤런트의 눈빛에는 분명 흡족함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떨어졌다.


세상에! 너무 창피해서 눈물이 또르르.

순간 친구들에게 합격했다고 거짓말할까 싶었지만

곧 웃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너희들만이라도 다녀서 스타의 꿈을 이루거라”라며 진심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사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친구들도 나도 그저 재미로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오디션을 보려하니 괜스레 진심이 되고 ’한번쯤은 꿈꿔봐도 되겠는데‘라는 투지까지 불타오른 것이다.


결국 백희와 명희 둘 다 연기학원에 등록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으니까.

대신 백희는 곧 “난 VJ가 될 거야”라며 매일 대본을 써 내려갔다. 음악을 소개하는 백희의 흉내 낸 무대는 어느새 우리의 즐거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금세 시들기도 했던 십대의 꿈들은 때로는 뜬금없고, 때로는 허망했으며,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들은 내 안에 재미와 용기를 남겼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꺼내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때의 무대가 아닌 종이 위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십대의 무모한 도전이 오늘의 글쓰기로 이어졌듯나는 브런치에서 또 다른 10년의 꿈을 이어가고 싶다.

브런치 작가라는 꿈으로.

작가의 이전글복숭아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