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순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아부지, 아부지, 식사하셔요!“
진숙이가 시아버지 점심상을 차려놓고 부엌에서 건너방까지 들리도록 크게 불렀다.
덕순이 할아버지는 요즘 들어 기운이 부쩍 빠져 있었다. 점심 무렵이면 졸음을 이기지 못해 이른 낮잠을 자곤 했고,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손녀 마중을 나가곤 했다.
“사골 좀 고와 달라 할까 했는디…”
입맛도 떨어지고 기력도 없어 며느리에게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효부라 소문난 며느리는 이미 소뼈를 사다 부엌에 두고 있었다.
‘내가 일찍이 알아봤지. 내 비록 앞은 잘 안보였어도 알차렸어. 덕순이가 복덩이라 했지만, 사실은 며느리 복덩이라 이 집에 복이 넘친 거여.’
세월이야 어찌저찌 버텨 여기까지 왔다. 손녀까지 품에 안아봤으니 더는 여한이 없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손녀와 나눌 이야기도 아직 많고, 며느리에게 갚아야 할 고마움도 많았다.
그러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진한 사골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할아버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덕순이 마중가야 쓰겄는디 왜이리 몸이 무거운겨. 덕순이가 기다릴텐디 어여 싸게 가야하는디’
잠시 뒤 곡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아이고 아부지 눈 좀 뜨쇼잉
세상에 누가 말도 않고 간답니까!!
아부지!!!! 아이고 아이고”
대문 앞에서 얼어붙은 채 방 안으로 들어가지도, 도망치지도 못하는 덕순이가 서 있다. 늘 전봇대 옆 바위에 앉아 손녀를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오늘은 그 자리에 없었음을 깨달은 아이의 어깨도 곡소리에 맞춰 들썩이기 시작했다.
천막이 쳐진 신촌 665번지에는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장례준비에 분주했다. 누구는 상여 나갈 길을 닦고, 누구는 부엌에서 손님에게 내어줄 음식을 손질했다. 어린 덕순이 눈에는 하루아침에 집안 풍경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버린 듯 보였다. 마당을 가득채운 상들, 향냄새와 국 끓는 냄새가 뒤섞인 공기,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이 흔하지 않던 시절.
죽음은 곧 집안 마당으로 들어왔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상을 치르는 절차도 모두 가족과 동네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밤새 이어지는 곡소리와, 간간이 섞여드는 웃음소리는 이상하게도 슬픔을 덜어주는 하모니였다.
꽃상여가 나가던 날.
덕순이는 대문 앞에 서서 상여꾼들의 발맞춤을 지켜보았다. 종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는 동네 할아버지 뒤로, 흰 수건을 두른 이웃 아저씨들이 상여꾼이 되어 소리를 냈다.
“어이야— 어이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어이야—”
점점 멀어지는 상여를 놓칠세라, 덕순이는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한겨울인데도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