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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선 Apr 27. 2021

임산부빠순이가 건대에서 엔씨티 만난 썰 푼다.

시작은 삐삐 들고 다니던 밀레니엄이었고 끝은 없었다(...)


사실 성인이 되어서 덕질을 하고 다닐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대학생 때는 덕질과는 담을 쌓았기에 더 그랬다. (돌이켜 본 사유:오빠들 군대 감) 회식이 되고 가열하게 덕질을 다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을 하고도 이어갈 줄은... 어렴풋이 알긴 알았다. 별 일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하겠구나ㅋㅋㅋㅋ 그렇지만 임신하고 컵홀더를 받으러 다니게 될 줄은 몰랐지.


작년 여름. 8월 2일 근처 어느 주말. 지방에서 올라온다는 덕친을 만나기 위해 배부른 몸으로 대중교통을 탔다. tmi지만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토하는 입덧과 시달렸고  6개월이 다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불면증도 동시에 와서 꽤 괴로운 상태였는데 심지어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몇 개월을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상태였었다.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네예...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아무튼 불면증은 여전했지만 징글징글한 입덧이 끝났으니 누구라도 만나서 입을 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와중에 지방에서! 덕친이! 나를 보겠다고!(아님) 올라온다는데 당연히 나가야지. 그렇게 우리는 압구정을 돌았다. 마크 사진이 붙어있는 카페에 앉아있기는 좀 그래서 조용히 컵홀더만 받고 사라지기를 몇 번...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인적이 드문 카페를 찾았고 온갖 이야기를 한 후 덕친을 내려다 보냈다. 덕친은 씨디를 많이 샀다며 한 장 챙겨줬고 내 가방 속에는 생일 카페에서 받은 스티커와 컵홀더 등등 암튼 엔씨티 팬을 인증할 만한 것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덕친을 보내고 왠지 집에 가기 아쉬워서 지하상가를 빙빙 돌고 있는데 A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먹을랭? 결국 고속터미널에서 건대입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게 되고ㅋㅋㅋㅋ 언니와 극적 상봉을 했다. 배부른 나를 보며 A언니는 하이디라오 가봤냐며 언니가 쏘겠다며!!! 그렇게 훠궈 집에 들어서게 되는데..... 일단 앉자마자 컵홀더부터 자랑하고 함께 앨범 구경을ㅋㅋㅋㅋ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실 A언니는 나를 엔씨티로 이끌어준 사람이기에 더 온갖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왠지 새 멤버는 더 이상 안 들어올 것 같다, 완전체 나오면 좋겠는데 안 해주겠죠? 소속사 개ㅅ.. 유닛 나올 거 같기도 해요 애들이 자꾸 스포를 하네 등등 온갖 궁예질로 판치다가 옆 테이블을 슬쩍 봤는데


덕선 : 헉 언니 옆에 너무 잘생겼어영.


지금 생각해보면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뭐가 잘생겼다고 한 건지 좀 의문임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일반인은 아닌 것이 분명한 뼈대, 검정 티와 츄리닝에도 훌륭한 옷태 등으로 미루어보아 적어도 어디 소속사 연습생일 거라고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우리가 잘 모르는 아이돌 일 수도 있다며 팬들은 다 알아보겠져? 라는 헛소리도 함. 그러다가 그 아이돌 연습생님이 좀 더웠는지 모자를 확 벗는데


덕선 : 오오 정우랑 닮았어요

A언니 : .....?정우잖아....?


그때부터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테이블 음소거됨ㅋㅋㅋㅋㅋㅋㅋㅋ 주마등처럼 방금 전까지 떠들었던 헛소리들이 마구 지나가곸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니 다 틀렸음ㅋㅋㅋㅋㅋㅋㅋㅋ 새 멤버는 둘이나 들어왔고 완전체는 해주긴 했음ㅋㅋㅋㅋ 이걸 듣고 있는 아이돌 본인이 얼마나ㅋㅋㅋㅋ 웃겼겠ㅋ냐고ㅋㅋㅋㅋㅋㅋ 아 다시 떠오르는 이 수치ㅠㅠㅠㅠ 와 벅참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어디서 엔씨티를 만나나요ㅠㅠㅠㅠ 이게 무슨 일 이양ㅠㅠㅠㅠㅠ


그때부터는 슴가가 웅장해져서 음식도 못 삼키고 대화도 거의 못하곸ㅋㅋ 테이블 위에 펼쳐뒀던 앨범부터 숨겼음. 본의 아니게 입을 다물자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목소리가... 황홀하게 듣던 와중 이 정도면 우리 얘긴 백번 들었겠눈데? 2차 수치 시작이요ㅠㅠㅠㅠㅠ 암튼 그렇게 눈치만 보다가 정우네가 먼저 일어났당. 뒤늦게 맞은편 테이블에 팬들이 있는 것도 알았다. (그쪽도 우리와 비슷하게 우연히 만난 모양) 정우가 일어나자마자 후다닥 뛰어가는 젊은이들...을 보며 A언니는 앨범도 있으니 사인이라도 받으러 가보라고 권했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드는고다.


사실 순이망상이야 트위터에서도 싸지르는 거니 순간의 쪽팔림이니 괜찮았다. 누가 봐도 사생은 아닌 모양새니 그런 오해를 받을 리도 없었고. 나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미 꽤 불러있는 배였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임산부가 본인을 덕질하고 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ㄲㅏ.... 그나마 오픈 마인드인 트위터에서도 순이 디폴트는 미혼여성이라, 내 마음속 어딘가에 당당하지 못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사인 받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앨범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나는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집에 오는 길에 설렘으로 속이 울렁거리던 와중에 계속 가슴 한켠에는 턱 걸리는 무언가가.......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어떤 분이 아이돌 팬 문화에서 기혼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글을 쓰신 걸 보았다. 보자마자 단박에 이해가 되어 조금 씁쓸했고, 그 날의 기억으로 다시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정작 아이돌들은 너만을 기다려온 나야 나 라지만 여전히 아이돌 문화를 쳐다보는 대부분의 시선의 허들은 높기만 한 느낌이다. 임신을 하고 나서,  애 딸린 엄마가 된 후에는 더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조여 오는 코르셋을 덕질에서도 느끼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어쩌나. 언젠가는 배부른 임산부도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않고 당당히 팬싸에 가는 날이 오길 바라며.


+ 이 글을 정우가 보게 된다면ㅋㅋㅋㅋ 그럴 리는 없겠지만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서제일잘생긴정우야 너는정말실물요정이더구나 살은그만빼고마니먹으렴ㅠㅠㅠ 그 날 밥먹는데 옆에서 헛소리해서 너무 미안햌ㅋㅋ 다 잊었길 바라. 누나가 너 믿는다. 활동기대할게 안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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