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이야기를 쓸 예정이지만 (어린이집에서 자기소개 한 썰 푼다 등) 일단은 닉네임에 충실하게 덕질 이야기를 쫌쫌따리 풀어보려고 한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첫 직장에서 가차없이 잘리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중 여느 때와 같이 음악방송을 켜서 보고있는데 마음속을 훅 치고 들어온 아이돌이 있었다. 무대가 첫번째인가 두번째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말인 즉슨 인지도가 매우 낮다=팬이 없다=신인가수이다 라는 뜻이었다. 주황겅듀 경력직 짬바로 즉시 공카에 가입을 하고 네이버 서치를 들어갔는데 (트위터 덕질이 활성화가 거의 안 되었던 시절) 정보라곤 소속사에서 올려준 이름과 생일 밖에 없었다고 한다 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공카글을 훑어보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주말 공방 참여 안내]
사실 나는 부산에서 나고자라 대학도 경남 쪽에서 다녔던 터라 서울에 가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촌년이었다. 내 오빠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콘서트였고, 감히 공방을 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터라 조금 걱정이 됐지만, 나는 백수였다. 그것도 비참하게 계약해지를 통보 받은 백수. 이력서와 자소서를 60개 정도 썼지만 어디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상태. 돈 쓸 곳이 없어서 월급이 그대로 통장에 쌓여있었던 사회초년생. 그렇게 나는 서울행 기차를 탔다.
오후 3시까지 오라고 해서 2시 50분에 도착했는데, 17번을 받았다. 이 번호를 적기 위해 밤도 새고 명단도 적고 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같이 간 친구도 덕질은 오래했지만 공방은 처음이라 더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음악방송 본방 녹화를 관람했다. 티비에서만 보던 아이돌들이 내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데 흥이 나지 않을 수가. 그렇게 공연을 보고 내려가려는데 조금 아쉬워서 친구 집에서 외박을 했다. 오빠 너무 멋있었어요 (사실 오빠가 아니라 동갑이었다) 전지적 빠순 시점의 응원글을 공카에 남기고 있는데 공지가 또 떴네? 내일도 보고 싶으면 등촌동으로 오시오. 그래서 또 갔다. 친구는 일이 있어서 용감하게 혼자 길을 나섰다. 어제의 경험을 교훈삼아 조금 일찍 길을 나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번호도 잘 받은 것도 좋았는데, 문제는 2월 그 한겨울에! 눈오는데! 길바닥에 우리를 세워놓은 점이었다. 덜덜 떨고 있으니까 급식으로 추정되는 팬 분이 핫팩이랑 사탕을 나눠줬다. 이것이 k-빠순정... 그리고 달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분이 있어서 조금 말을 걸었는데 그 그룹의 몇 없는 홈마였고 ㅋㅋㅋㅋㅋ 옆에서는 쪽수 많은 아이들 팬들이 서로 욕하고 싸우고 있고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그 때 부터 나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며 반성을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본방을 봤나 녹화본을 봤나 기억도 안 난다. 너무 힘들고 지치고 배고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끝나자마자 어디라도 들어가서 밥먹어야지 했는데 갑자기 매니저들이 뫄뫄 팬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하는고다. 그리고 방송국 뒷쪽에 있는 음지의 골목길로 우리를 모았다. 눈대중으로 보니 스무명 조금 넘는 것 같았는데, 선물이라도 주려나 했더니 갑자기 검정색 벤이 우리 앞에 뙇! 아이돌이 하차를 뙇! 안녕하세요오 뙇! 세상에... 그렇게 길바닥에서 눈맞으며 미니팬미팅을 ㅋㅋㅋㅋㅋㅋㅋ 시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복이 뭐가 문제죠? 그 때 부터 내 얼굴에 떨어지는 건 눈이 아니라 꽃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30분 정도 길바닥 팬미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지하철 반대로 탈 뻔 한 건 안 비밀. 부산까지 아무것도 안 먹은 건 너와 나만의 비밀.
그 때 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행사를 다니게 됐는데, 마침 서울과 세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이직을 하게 됐다. 일을 하고 있으니 방송국에 가서 길에 서 있는 짓은 도저히 못하겠고, 주말에 하는 행사를 노리고 있었는데 무려 팬미팅을 한다고 공지가 떴다. 뭘 사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꽃다발을 하나 샀다. 왜냐하면 미니 팬미팅 때 급식 팬들이 오빠들에게 초코우유 주고 ㅋㅋㅋㅋㅋㅋㅋ 그랬던 걸 봤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 마음이 중요한 거지만 아무튼 ㅋㅋㅋㅋ 첫 팬미팅이니 꽃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간건데, 어떻게 찾아간 팬미팅 장소가 좀 이상하다...? 통나무집...? 이게 뭐죠? 그렇다 소속사에서는 교외에 있는 카페를 빌려ㅋ 팬미팅을 추진한 것이다. 갔더니 팬+아이돌+스탭 포함 40명 쯤 되려나. 어떻게 테이블에 대여섯명씩 묶여서 앉아있는데 갑자기 내 아이돌들이... 식사를 갖다줬다............. 이게 뭐죠? 아아주새오. 메뉴는 기억이 안나는데 한그릇 음식에 밥이랑 김치랑 반찬이랑 있었음. 어리둥절하며 먹기 시작했는데, 앞에서는 노래 시작... 기획자 누구야 소속사 무슨 짓이야ㅠㅠㅠㅠㅠㅠㅠ 가져간 꽃다발을 어쩌나 싶어서 지나가던 매니저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주라고. 친구 생일파티도 이렇게는 안하겠음. 아무튼 꽃다발은 던지듯이 줬고. 얼이 빠진 나는 같은 테이블에 있는 성인 팬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 때도 다시는 안 가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음.
그렇지만 또 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냐면 최애가 꽃다발 들고 너무 활짝 웃는 사진이 올라와서^_^ 3만원짜리 꽃다발에 그렇게 행복해 할 일이니? 그렇다면 내가 또 가주마! 라는 마음으로 ㅋㅋㅋㅋㅋ 그 시기 쯤 블로그를 팠다. 트위터는 없고 블로그만 있던 시절. 그리고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은 케이블 방송의 컨텐츠들을 보고 글을 쓰고 주접을 떨고 사랑을 고백하고. 블로그가 없어서 검색하면 내 블로그만 상위에 나오던 시절이여. 아무튼 상황이 그러다보니 소속사에서도 좀 눈여겨 볼 수 밖에 없었던 게, 공카에 가입하는 애들이 족족 내 블로그 이름을 대며 여기서 입덕했어요< 라고 하니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 은근히 이벤트 당첨 시켜주면서 사인 씨디도 보내주고 그랬던 것 같음. 가장 기겁한 것은 최애가 공카에서 블로그 잘 보고 있다고 댓글을 단 일인데. 야 너 똑바로 해라 친목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대댓글 쓰고 싶은 거 겁나 참았다 ㅋㅋㅋㅋㅋㅋ
불같은 덕질 속에서도 남는 것은 사람 뿐이라, 카페 팬미팅 때 만났던 성인 팬들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무슨 이유인지 두 패로 갈라져서 서로를 씹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쪽 분들은 이미 아이돌들과 술도 마시는 찐친이 되어 있었음. 심지어 아이돌의 어머님들과도 연락을 하는 사이였고 최애의 어머님이 내 직업을 매우 궁금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식겁하며 블로그를 닫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 뒤로 소속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몇 번 갔고, 팬싸인회에 한 번 갔다. 부산에서 하는거라 본가에 들를 겸 겸사겸사 간 건데, 최애는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봐줬다ㅋㅋㅋㅋ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티셔츠 한 벌 사가지고 갔는데, 그 옷 입고 셀카찍은 최애님 덕에 연락하던 성인팬들과는 인연이 다 끊겨ㅋ버림ㅋㅋㅋ 걔가 인증한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자기들도 정작 중요한 얘기는 나한테 안해줬으면서 힝.
그 뒤로 멤버들과 소속사에서 갈등이 생기고, 앨범이 나오려다 엎어지고, 나는 일에 찌들어가며 천천히 식었다. 그 때 여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최애의 엄마는 왜 내 직업을 궁금해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쨌든 남는 건 추억이고, 설렜던 기억이니 그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금 생각하면 술은 한 번 먹어볼 걸 그랬다. 순이와 친목질은 망하는 지름길이라 더더욱 몸을 사렸는데 나만 몸사린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음ㅋㅋㅋㅋ 근데 난 그들이 진짜 잘되길 바랐어서 그런건데 일이 이렇게 되어 아직도 매우 아쉽고...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린오)빠들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