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처음 한국에 방영된 짱구는 못말려. 한국에 방영된 지도 26년, 짱구는 여전히 5살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감자처럼 생긴 머리에, 송충이 같은 눈썹이던 때의 짱구와 지금의 짱구는 모습이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짱구는 변함없는 짱구였다.
비록 내 방 안이 짱구로 가득한 건 아니지만,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지금까지 짱구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짱구의 극장판은 <액션가면 대 그래그래 마왕>부터 <신 차원! 짱구는 못말려 더 무비 초능력 대결전 날아라 ~수제김밥~>까지 국내에 개봉한 건 다 챙겨 봤고, 현재 투니버스에서 방영 중인 짱구는 못말려 24기도 지난 주 금요일 방영 분까지 모두 다 봤다.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가끔 극장판과 연결되는 내용이 떡밥처럼 뿌려지곤 한다. 그 중 하나가 짱구는 못말려 23기의 14화, 극장판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의 내용이다. 흰둥이로 변장한 짱구 아닌 누군가, 불꽃 축제 연습을 위해 짱구네 집으로 온 떡잎마을 방범대와 함께 연습을 하게 된다. 나중에 극장판을 보고 나서야 두 내용이 이어지고, 극장판의 떡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모님은 "어휴, 지금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짱구를 보고 있어? 네가 애야?" 하고 걱정이 담긴 한숨을 쉬곤 하시지만, 나에게는 짱구가 있어야 순수함과 동심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짱구가 예쁜 누나들을 밝히고 엉뚱하긴 하지만, 순수하고 정의롭고 사랑이 가득한 나의 깐부다.
짱구는 늘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구하러 가고, 흰둥이를 지키고, 짱구가 그렇게 좋아하는 액션 가면과 칸탐 로봇이 되기도, 같이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바닥이 나있던 인류애와 사랑이 차오른다. 점점 사람을 믿기 어려워지고 살기 어려워지는 이 세상에서 짱구의 순수함과 정의로운 마음은 충전기가 되어준다.
극장판과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짱구는 다섯 살의 어린 아이지만, 누구보다 편견 없고 용감하고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짱구를 데빌구라고 부르는 건 알고 있다. 순수함에서 비롯된 악한 행동이 있는 건 맞다. 아무리 잘 타일러도,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미운 다섯 살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런 짱구가 좋다. 순수한 악이 있는 만큼 순수한 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순수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정글의 원숭이들이 가족들과 친구들을 데려가도 정글에 잠입해서 사람들을 구해내고, 서부의 영화 속에 갇혀서도 짱구는 떡잎마을 방범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잊지 않기 위해 애쓴다. 흰둥이의 엉덩이에 폭탄이 붙어있을 때는 흰둥이를 안고 도망 다녔고, 짱아가 짱아별의 공주님일 때는 오빠들이 늘 그렇듯이 동생과 다투고 투닥거려도 결국 동생을 걱정하며 다시 찾아오는 오빠였다. 짱구 아빠와 짱구 엄마가 어른 제국에서 아이가 되고, 동물로 변해서 기억하지 못 해도 짱구는 끝까지 짱아를 안고 부모님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싸웠다.
이 외에도 수많은 짱구의 진지함과 순수함, 정의로움, 사랑이 가득한 면모가 담긴 부분은 더 많지만 짱구의 극장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극장판은 <어른 제국의 역습>이었다.
그 많은 장면 중에서 짱구 아빠가 할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짱구 아빠가 자라면서 혼자 타게 되고, 그 이후에는 짱구 엄마와 함께 타고, 결혼하고 나서는 짱구를 태우고 함께 타고, 짱아가 태어나게 되면서부터 짱아를 태운 짱구 엄마와 함께 넷이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감동으로 느껴졌다.
짱구의 극장판은 가족애, 인류애, 모성애, 부성애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금 시대의 모습이 담겨져 있고, 과거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 시대를 짱구는 다섯 살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일 때는 초코비 하나 사먹기가 어려웠는데, 어른이 되면 초코비는 가끔씩 사먹게 된다. 짱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괜히 먹고 싶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