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 '덕질 감상엔 시'를 썼어야 했는데, 설 연휴인지라 음식 준비를 한다고, 정신 없이, 공지도 없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최근에는 덕질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음악을 듣는 횟수가 줄어들고, 취미 활동도 줄어들고, 아이돌을 보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을 보는 것도 줄어들고, 게임하는 것도 줄어들고, 웹툰을 보는 것마저 줄어들었다.
이렇게 줄어들고 나니 내가 뭘 좋아했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르겠다.
소설을 쓴다고 책을 필사하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활동은 아니지만 원래도 하던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책은 윤동주 시인의 시와 채식주의자를 필사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이미 한 번의 필사를 마쳤고, 두 번째 필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첫 번째 필사 때는 문체를 느끼며 필사 했고, 두 번째 필사 때는 노트 한 페이지마다 절반으로 접어서 왼쪽에는 필사, 오른쪽에는 느낀 점과 분석한 부분에 대해 적어가며 하루에 한 페이지씩 채워갔다.
이마저도 설 연휴와 방 옮기는 일 때문에 쉬고 있다.
최근에는 그림을 그렸다. 유튜브의 짧은 영상을 보는데, 자기 무릎에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 영상이었다. 화장품으로 그리는 걸 보고 영감을 받은 나는 '화장품으로 사람만 그리라는 법은 없지.'라고 생각했고,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미를 간단히 그리는 걸 연습하며 꽃잎에 립스틱을 발랐다. 그러다가 문득 우주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주를 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검정색 유성매직으로 한 면을 가득 칠했다. 붓에 물을 칠해서 매직을 번지게 했고, 그 위에 립스틱을 발랐다. 립스틱을 붓으로 펴 바른 후에 손으로 문지르고 나니 묘한 색이 나왔다.
조금만 더 밝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랍을 열었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채로 방치된 초록색 톤업 베이스 크림이 눈에 띄었다. 그걸 쭉 짜서 손으로 펴 바르니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색이 섞이면서 한 톤 부드러워졌다.
그 색 위에 뭘 더 바르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펄이 들어간 아이섀도우와 하이라이터를 한가득 칠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제법 우주 공간처럼 보였다.
이 위에 톤업 베이스 크림으로 별을 그리고 달을 그리며 완성한 게 저 위의 그림이다.
그 그림을 일주일 후에 보니 마르면서 그림의 느낌이 또 달라졌다.
보랏빛이 돌았던 우주는 원래의 매직 색이 살아나며 어두운 느낌으로 변했다. 달은 더 푸르게 변했고, 별은 뿌옇게 변하며 별인지 먼지인지, 아니면 움직임 때문에 모양이 흐트러진 것인지 알 수 없게 변했다.
물감으로 칠했다면 왼쪽에서 끝났을 그림이 화장품으로 칠하고 나니 변하는 게 재밌었다.
앞으로도 화장품으로 자주 그려보려고 한다. (화장품은 안 쓰는 거, 유통기한이 지나서 쓸 수 없는 것들을 위주로 쓰고 있다.) 화장품으로 그리는 건 예측 불가하고, 재밌으며, 자유롭기에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덕질이 줄어들어도 나는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것 찾으며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