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남들이 잘 하지 않을 것 같은 것만 골라서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덕질도 그렇게 대중적이었냐고 생각하면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이런 점을 미루어 봤을 때는 남들과 같은 걸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요리도 뭔가를 따라하거나 건강하게 먹기 위해 레시피를 바꾸는 식이었지만, 점점 모든 게 내 개성과 귀찮음을 같이 만족시켜줄 방법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마트에서 장 볼 때 고른 유산슬을 카레에 싸먹거나 찍어먹는 난에 넣어서 춘권처럼 접었고, 그걸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것이다.
지어본 이름은 '유난만두'다. 유산슬로 참 유난스럽게 만두처럼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홀로 이름을 붙여봤다.
폰케이스를 생일선물로 받은 이후로 투명 폰케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투명한 것도, 다른 그림이 있는 폰케이스도 누군가가 쓸, 쓰고 있을 것이기에 다르게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이소에서 아크릴 물감과 둥근 붓을 사고, 젯소와 바니쉬를 사고, 페인트 붓까지 적당한 크기로 사고 나자 '폰케이스 꾸미기'가 아닌 '폰케이스에 그리기'가 되었다.
폰케이스를 스티커로 꾸미고, 모델링 페이스트나 레진으로 그림 그리는 것도 너무 많이 봐서인지 내키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정공법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유화나 수채화는 말리는데 오래 걸리니까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게 되었고, 젯소는 색이 잘 착색되도록 도와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됐고, 바니쉬는 그린 그림이 손상되지 않도록 마무리로 발라주는 거라는 것까지 알게 됐다.
사실 손상되어도 상관 없었다. 다 지우고 나서 새로 그리거나, 적은 면적에는 덧그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해서 두 개의 폰 케이스를 모두 칠하게 됐다.
첫 번째 폰 케이스는 파랑과 초록을 섞어서 칠하다 보니 연못의 느낌이 나서 모네의 수련을 떠올렸다. 연잎을 그리고 위에 연꽃을 그렸는데, 가장 아래의 큰 연꽃이 칠하다 보니 망쳐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살리지?' 하다가 덧칠하고 또 덧칠했더니 어영부영 연꽃이 되었다.
빛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흰색을 덧칠했더니 색이 섞이며 은은하고 평화로운 색이 되었다.
두 번째는 파랑을 밑에 깔았고, 초록, 주황, 노랑, 흰색까지 여러 색을 마구잡이로 칠한 결과물이었다.
솔직히 처음 색을 봤을 때는 빈티지한 느낌이었고, '어느 오염된 지하수 색인가?' 했었다.
굳고 나면 위에 덧칠하고 덧칠하다 보니, 색이 점점 쌓이면서 어디는 바다 같고, 어디는 바위 같고, 어디는 파도나 오로라처럼 보이기도 하고, 에메랄드 보석 같기도 한 게 매력 있고 독특한 그림이 되었다.
위에 바니쉬를 발랐어도 손이 자주 닿다 보니 벗겨지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고 있는 편은 아니다.
벗겨지고 나면 나중에 다시 그릴 때가 올 테니까 벗겨지는 게 싫지 않고 오히려 기대되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그림을 그려서 사진이나 일기로 남기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기에 너무 궁금하다.
덕질은 가능성을 남기고, 그 가능성을 먹고 자란 아이는 더 많은 생각을 가지며 상상과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