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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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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Aug 22. 2023

16화 - 너는 내 세상이었어

세상의 모든 게 덕질로 가득 찼을 때가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그런 세상이었고,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좋아한 사람들이었다.


중학생이던 나의 세상 전부가 되어 12년을 계속 덕질한 이번 일기의 주인공은 빅스(VIXX)다. (빅스는 적을 게 많아서 입덕과 탈덕으로 나눠 탈덕한 시기에 맞춰 또 적어보려고 한다.)


VIXX(켄, 혁, 엔, 레오) / 출처 빅스 공식사이트


2012년 5월 24일에 데뷔한 빅스를 27일에 알게 됐다. 27일은 일요일이었고, 인기가요를 하는 날이다. Super Hero라는 곡으로 데뷔하는 빅스를 보고 푹 빠지게 된 계기는 래퍼인 라비의 걸걸하고 거친 목소리 때문이었다.

SUPER HERO 앨범 앞면


Rock Ur Body로 컴백했을 때는 콘셉트가 눈에 띄었다. 게임 캐릭터답게 노래도 오락실 게임 같아서 재밌었다.

Rock Ur Body 앨범 뒷면


겨울에 나온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니까는 당시의 소속사 선배였던 박효신, 성시경, 서인국, SG워너비의 이석훈과 함께한 프로젝트 곡이다. 겨울이 가까워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음원사이트 순위에 올라와 있고, 학교 학예회면 꼭 나오는 필수곡이었다. 나도 학예회 때 이 노래로 춤을 췄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무서워서 피했었는데 이날은 유독 행복하고 즐거웠다.


다칠 준비가 돼있어라는 노래로 2013년에 컴백했을 때였다. 빅스가 끼고 나온 컬러렌즈가 무서웠다. 사람의 눈보다 이질적인 느낌이었고,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뱀파이어라는 콘셉트가 너무 멋있었다.


Hyde....는 앨범명이 각각 Hyde, Jekyll이다. Hyde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그 하이드 콘셉트다. 그 모습이 타락한 천사 같기도 했다. 대....너는 하이드와 다르게 밝고 청량한 곡이어서 지킬의 선과 하이드의 악을 대비되게 잘 표현한 거 같았다.

HYDE 앨범 앞면, JEKYLL 앨범 앞면


여자는 왜라는 곡은 옥상달빛 언니들과 함께한 앨범의 타이틀이다.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에서 고정 게스트로 같이 나왔었다. 앨범은 몽글몽글하고 귀엽게 생겼고, 노래도 귀여웠다.

Y.BIRD from Jellyfish Island With VIXX & OKDAL 앨범


빅스의 뮤직비디오 중 유일하게 보지 못한 게 있다. 그게 저주인형이다. 뮤직비디오가 잔인해서 1분을 넘기지 못하고 꺼버렸다. 저주인형 앨범에 있는 수많은 인형들 중 하나를 골라 부직포 안에 솜을 넣고 꿰매서 만들었다. (인형도, 앨범도 치우면서 어디로 갔는지 못 찾았다.)


기적은 드디어 사람이구나! 하고 좋아한 곡이다. 그동안의 콘셉트가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었어서 사람이라는 게 너무 반가웠다.

기적(ETERNITY) 앨범 앞면


Error는 사이보그 콘셉트의 곡인데, 춤도 사이보그 느낌의 무거운 듯한 쇠들이 움직이는 거 같았다.

Error 앨범 앞면


이별공식은 R.ef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인데, 가장 많은 1위를 안겨준 고마운 곡이다. 다크한 콘셉트의 곡이 많았어서 이렇게 듣기 편하고 청량한 노래는 가뭄의 단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다.

Boy's Record 앨범 앞면


빅스의 유닛인 빅스 LR의 데뷔곡 Beautiful Liar는 인상적인 곡이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뮤직비디오가 정말 좋았던 게 노래의 의미를 잘 표현한 거였다. 저대로 떠나가게 둘 거냐고 붙잡으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붙잡고 거짓말을 해서 이대로 보내주자는 마음이 충돌하는 모습은 짧은 드라마를 본 기분이었다.

Beautiful Liar 앨범 앞면


사슬은 신기했다. 사랑의 노예 콘셉트인데, 노예증서 같은 게 앨범에 랜덤으로 들어있었다. 이때 가장 놀랐던 건 초커였다. 남자가 해도 멋있었고, 콘셉트와도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어서 갖고 있던 편견이 하나 깨지는 걸 느꼈다.


다이너마이트는 신 3부작의 시작으로 Zelos, 질투의 신을 상징하는 곡이다. 화려하고 예쁜 색감과 시원한 노래가 잘 어울려서 눈과 귀가 행복했다.


Fantasy는 신 3부작의 두 번째인 Hades, 지하세계의 신을 상징하는 곡이다. 도입부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웅장한 게 어두운 숲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현대무용 같은 안무가 멋있었다.


The Closer는 신 3부작의 마지막인 Kratos, 힘과 권력의 신을 상징하는 곡이다. 레이스 안대가 인상적이었고, 어떤 걸 해야 팬들이 더 좋아하고, 어떤 아이템을 써야 더 좋을지를 많이 연구한 느낌이었다. 다이너마이트, Fantasy, The Closer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스토리고, 가장 많은 추리와 해석들이 있었다.

스페셜 패키지 KER 앨범 앞면


신선, 꽃도령으로 불렸던 신선 콘셉트의 동양풍 판타지인 도원경은 빅스의 모든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한 곡이었다. 무대에서 부채의 촥 하고 펴지는 소리와 한복이 아름다웠다. 이 노래는 연말 무대를 기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새해에 쇼 음악중심 무대에 섰고, 평창동계올림픽 IOC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 개회식의 공연으로도 섰었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도원경 앨범 앞면


빅스 LR의 컴백곡, Whisper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 연상되는 노래다. 확실히 드라이브하면서 듣기 좋을 노래 같다.

Whisper 앨범 앞면


EAU DE VIXX 앨범의 은 빅스가 군대 가기 전, 6명으로는 마지막인 곡이다. 조향사 콘셉트고, 연말무대 때마다 다른 콘셉트로 나오는 바람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중세시대의 고위 귀족 복장의 뱀파이어, 악령들을 쫓는 사제의 스토리가 있어서 무대를 볼 때마다 노래가 다르게 들렸다.

EAU DE VIXX 앨범 앞면


걷고 있다, 평행우주, Gonna Be Alright까지 나왔지만 내가 갖고 있는 앨범은 EAU DE VIXX까지다.


빅스를 좋아할 때의 나는 하루종일 빅스 얘기만 하고, 친구랑 대화해도 빅스로 시작해서 빅스로 끝낼 정도였다. 친구가 한 번은 빅스 얘기 좀 그만하라고 그래서 자제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참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빅스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고, 가끔은 빅스를 보기 위해 연말 가요시상식과 뮤지컬을 보러 가거나 행사를 가기도 했고, 빅스의 춤을 커버하는 댄스팀에 잠깐 속해있기도 했다.


내가 본 뮤지컬은 빅스 켄이 나오는 잭 더 리퍼였고, 친한 언니와 함께 보러 갔었다.(이 언니도 댄스팀에서 만났다.) 출근길, 공연, 퇴근길까지 다 봤는데 퇴근길이 되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혼잡했다. 공연을 보지 않은 팬들과 팬들이 몰려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이 더해진 것이다. 사람들이 "누구야?", "아이돌 같은데?" 하고 웅성거릴 때마다 입이 근질거렸던 나머지 "빅스 켄이에요!" 하고 얘기하게 되었다. 소심하고 낯 가리던 성격도 덕질 앞에선 상관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늘수록 물어보는 분들도 많았고, 그때마다 나는 지치지 않고 "빅스의 켄이고요! 여기서 잭 더 리퍼 뮤지컬 하는데 다니엘 역으로 나오고 있어요!"까지 얘기하게 되었다.

뮤지컬 잭 더 리퍼 포토북, 빅스 켄 소개 페이지


대학교 전공이 방송작가인 것도 사실 빅스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마음과 내가 쓴 글이 방송으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가게 된 거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빅스의 리더인 엔이 DJ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고, 드라마 대본의 캐릭터들도 빅스의 성격과 이름을 가지고 만들었을 정도다.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팬사인회 현장에서 "왜 팬들을 빠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별빛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빠순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던 빅스의 말 때문이었다. 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예뻐서 좋았고,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빅스여서 더 좋았다. 빠순이라는 말이 좋은 의미가 아니었기에 나도 그런 말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흔들린 적이 있다. 팬을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빅스를 놓지 못하고 계속 좋아했다. 놓는 순간 큰일 나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흔들리고, 그만둘까 생각했던 건 빅스의 릴레이 라이브 방송 때였다. 막내인 혁 오빠의 방송 때는 "사랑해"라고 채팅을 쳤고, 그걸 본 혁 오빠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손하트를 해줬다. 사실 너무 행복해서 끝까지 다 보려고 기다렸다.


다음 타자인 홍빈의 방송 때, 과제하면서 듣고 있었던 나머지 다른 목소리가 들렸는데 누구 목소리인지 제대로 듣지 못한 내가 "누구 왔어?" 하고 댓글을 적었다.


"누구 목소리인지 몰라? 팬 맞아? 켄형 목소리도 모르네." 하는 답을 들었다. 그 답을 듣고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대로 나갔다.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종처럼 비춰졌을 수 있겠다 싶긴 했지만, 상처받은 마음으로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걸 주변 친구들에게 얘기해 봤지만, 거의 대부분은 "네 댓글 읽어줬으면 된 거 아니야? 좋은 거잖아. 좋게 생각해~!"라고 말했다. 그 말도 내가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서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만두지 못한 건 다른 멤버들이 눈에 밟혀서 그랬다.


그만큼 내 세상은 빅스로 가득했고, 빅스뿐이었다. 빅스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나보다 빅스가 더 우위에 있고, 나보다 빅스가 더 소중한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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