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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98화 -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by 덕후감

판타지보이즈의 SOS 요청 영상을 보고 난 이후, 한동안 잊고 있던 문제들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덕질도 오래 해왔다. 그런데도 늘 마음 한구석엔 찝찝함이 남았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걸까?’ 그 답은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악습들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가 덕질하며 느꼈던 문제들을 다시금 되짚어 보려 한다.

1. 연예인은 상품이 아니다

연예인을 한자로 풀면 ‘예술적 재능을 펼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개인을 상품, 혹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본다. 이 시선은 연예인에게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연예인은 공인이므로 완전무결해야 하고, 애인은 있어도 없어야 하며, 팬들의 이상형이자 판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요구에 시달린다. 그들의 재능은 기획자의 판단에 따라 길러지되, 억압과 통제를 동반한다.

잘 빚어낸 그릇, 잘 그려낸 그림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 아래에서, 우리는 그들의 인권과 사생활을 너무 쉽게 소비해버리고 있다.

(아이돌들이 말한 조항으로는 핸드폰 금지, 성별이 다른 연습생, 아이돌과 말 섞거나 눈 마주치지 않기, 통금 시간 등이 있다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한 적이 있다.)

2. 소모되는 몸과 마음

잠은 이동하는 차 안, 대기 시간, 짧은 휴식 시간에 쪼개어 자야 한다. 식사는 대기실이나 차량, 연습실 등에서 때운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헤어, 메이크업, 의상 준비 속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그들을 향한 시선은 집요하다. 어딜 가나 시선 집중에, 행동, 말 한마디까지 분석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많은 이들이 달려든다. 그 속에서 신체적 소모뿐 아니라 정신적 소진도 급격히 진행된다.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 질환을 앓다가 결국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이렇게까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둔 시스템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돈 많고 인기 많은데 왜 죽어?"라며 포기한 이를 비정상으로 보고, 다른 연예인들이 그들처럼 포기하기를 바라듯 익명 뒤에 숨어 시스템에 동조하고 있다.

3. 섹슈얼리즘과 성상품화

이 문제는 특히 아이돌에게서 두드러진다. 아이돌의 평균 나이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그들이 입는 옷은 점점 짧아지고, 콘셉트는 점점 자극적이다.

어린 아이들이 크롭티에 짧은 치마를 입고, 섹슈얼한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안무를 소화한다. 시청자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회사는 ‘콘셉트니까’라고 말하지만,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돌 본인이 짊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는 소비자 심리에 맞추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연예인은 또 한 번 상품으로 취급당하며, 성적 대상화의 중심에 놓인다.

그의 예로 MBN에서 방영될 뻔했던 '언더 피프틴'이 있다. 15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펼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폐지된 이유는 15살 이하의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어른들 덕분이다.

15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마저 성상품화, 착취할 생각인 건지, 기획자의 의도가 시대 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적 대상화는 미디어 플랫폼에서도 더욱 교묘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유튜브, SNS에서 누가 봐도 성희롱이 분명한 댓글에 '좋아요'가 눌리고, 대댓글을 달며 동조한다. 또, 아이돌의 사진을 도용해 딥페이크 영상까지 만들어 유포하기도 한다.
일부 소속사는 아티스트 보호 차원에서 법적 대응에 나서지만, 대부분은 이를 묵과하고 외면한다.


언제까지 성범죄에 노출된 이 아이돌들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답답할 뿐이다.


4. 어두운 그림자 – 스폰서 문화

아이돌이 데뷔 전이거나, 데뷔 후 잘 뜨지 않을 때, 일부 소속사는 ‘스폰서’라는 이름으로 성접대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자본과 인맥을 통해 활동 범위를 넓히려는 수단이다.

그 대상은 대개 사회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연습생이나 신인이다.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소속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니, 오히려 그 피해를 강요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연예계의 어두운 그림자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마무리하며,

이외에도 템퍼링, 상표권 분쟁 등 누군가의 욕심으로 인해 아이돌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일 또한 오래 지속되었고, 계속 생겨나고 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구조를 외면한 채 지속된다면, 우리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는 ‘좋아한다’는 감정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그들의 재능을 응원하되, 인권을 소비하지 않고, 상품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연예인을 향한 과도한 기대, 악성 댓글, 사생활 침해, 성적 대상화는 낡은 구조 속에 깊이 박혀 지금도 그들을 조여 온다.

그 구조가 또다시 누군가의 비명을 앗아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할 때다.


일기를 다 쓰고 나니, 떠오르는 뮤지컬 넘버가 있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인간이다.
흐르는 피는 뜨겁다, 다르지 않아.
난 너희의 피조물이 아냐.
난 너희의 발명품 생쥐가 아냐.
너 들어봐, 고동치는 이 소리.
나 뜨거운 붉은 피 흐르고 있어.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나는 인간입니다.
난 당신들의 생쥐가 아니에요!"

-뮤지컬 《미스터마우스》 넘버 '나는 사람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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