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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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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Sep 22. 2023

25화 - 깨끗하게 덕질 매너리즘 극복

글이나 그림처럼 덕질도 점점 비슷해지고, 재미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대로 계속 덕질을 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발견하게 된 사람이 있다.


스물다섯 번째 일기. 가수 & 배우 김세정

출처 : 김세정 인스타그램(clean_0828) / 김세정


덕질에서 이걸 매너리즘이 아닌 '노잼 시기'라고 불렀다. 노잼 시기가 왔다는 걸 알았을 때는 굳이 앨범을 사고, 보러 다니지 않은 채 현재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 줄 알았던 고등학생의 삶. 학교 끝나면 학원, 학교 끝나면 인강, 학교 끝나면 과외, 방학이면 방과 후 수업까지도 듣던 그런 때였다. 공부는 늘 재미없고 덕질도 재미없는 날들이 늘어만 갈 때, 세정언니를 프로듀스 101에서 보게 됐다. 그냥 딱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1등 저 언니인가? 데뷔하면 누구든지 좋아할 프리패스상인데.' 하고.


그럼에도 덕질을 할 마음이 없어서 공부만 하는 날이 계속됐다. 프로듀스 101이 끝나고, 아이오아이로 데뷔한 걸 알았을 때부터 갑자기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바로 안 건 아니고 몇 개월 정도 뒤늦게 알게 됐다.)


덕질은 꽃길이라는 노래로 시작했다. 그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목소리도 너무 맑고 깨끗해서 더 좋아하게 됐다.


노래방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친구랑 2주에 한 번씩 갔었는데, 가면 무조건 부르는 노래가 바로 꽃길+아이오아이 메들리(소나기, 너무너무너무, Whatta Man)였다. 스트레스 받고 힘들 때 부르면 속이 시원하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I.O.I / 아이오아이는 프로듀스 101에서 데뷔한 11명의 걸그룹 이름이다.)


1년도 안 되어 활동이 끝나고,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에서 구구단으로 데뷔한 세정언니를 보며 더 좋아하게 됐다. 힘들고 속상할 텐데도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게 웃으며 활동하는 모습이 그땐 정말 언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멋있어 보였다. 언니도 어렸고, 신인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을 다잡았다. 힘들어도 웃고, 슬픈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가던 어느 날, 구구단의 활동이 종료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멤버들은 하나둘 노래와 연기 등 자기만의 길을 찾아 흩어졌다. 세정언니는 연기와 뮤지컬, 솔로 활동까지 열심히 해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따라가던 나는 무기력과 번아웃에 시달리게 됐다. 그때쯤에 터널과 화분이라는 곡이 나왔다.


터널은 언젠간 이 긴 어둠이 끝날 거라며 위로와 희망을 주고, 화분은 이대로 잠깐 쉬었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일어나자 하고 같이 앉아서 화분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부르고 부르면서 끝이 나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서 덕질할 때쯤 Whale이 나왔다. 그동안 힘들어했던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동안의 나를 마음 한편의 서랍으로 보내주는 느낌이었다.


I'm 앨범이 나왔을 때,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끝나고 나온 터라 더 기뻤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노래하는 세정언니를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Teddy Bear는 곰인형처럼 따스하고 포근하고 몽글몽글하고 귀엽고 몽환적인 노래라서 들을 때면 누워서 꿈꾸는 기분이 든다. Warning은 살다가 갑자기 모든 게 무의미해지고 번아웃이 올 때, 울리는 경고다. 잠시 멈추고 쉬면서 여행을 떠나거나 좋아하는 거, 하고 싶었던 걸 해보라는 말이기도 하다. 밤산책을 들을 때면, 캔맥주 한 캔 시원하게 마시면서 밤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가자는 집에 갈 때 듣기도 하지만, 힘들 때 친구에게 전화 거는 기분 같아서 여러모로 해제되는 게 느껴진다. 신경 쓸 것도 없고, 괜찮은 척 안 해도 되는 알맹이의 상태로 있을 수 있어 편안해진다. 아마 난 그대를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가슴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들을 때마다 세정언니가 생각나고 언니를 좋아하는 내 마음 같아서. "아마 난 그대를 보다 더 좋아하게 되겠죠. 말갛게 웃음 짓는 여린 아이가 되어. 닫아논 마음이 자꾸만 새어 나오곤 해요. 아픔보다 그대가 좋기에."


Baby I Love You가 나오던 날, 나는 혼자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세정언니 사랑해!"를 외쳤다. 그냥 외치지 않고는 못 견딜 거 같았다.


사내맞선은 웹소설 원작으로 웹툰이 먼저 나왔었다. 웹툰에서 하리 태무 커플을 너무 좋아했고 재밌게 봤었는데 가장 좋아한 웹툰의 가장 좋아한 캐릭터인 신하리로 세정언니가 나와서 정말 기뻤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솔직히 오글거릴 수 있는 대사와 행동을 너무 능글맞게 잘 소화해 줘서 더 좋았다. 정말이지 세정언니는 사랑인가 봐.


경이로운 소문 1에 이어 경이로운 소문 2 : 카운터 펀치까지 도하나로 열연한 세정언니의 활약이 너무 빛났다. 사실 소문이랑 이어지는 것보다 언제나 기다리고 다시 만나서도 웃게 해 주고 다치지 않게 감싸준 도휘가 더 좋았고, 하나랑 이어지면 좋겠다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멋있고 까칠한 것도 좋고, 카운터니까 악귀 잡는 것도 좋은데 좀 더 편안해지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드라마 과몰입이 끝나자마자 세정언니의 첫 정규앨범인 문(門)이 나와서 11곡을 매일 듣고 있다.


선공개곡으로 먼저 나온 항해는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배 위에서의 축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원하고 마음이 들뜬다. 세정언니의 깨끗하고 맑은 음색에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드는 노래다. Top or Cliff는 정상에 서기 위해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붙이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지만, 나는 뮤직비디오가 잔인한 게 결국은 정상에 올라서기 위해 밟고 올라가야 하는 현실처럼 느껴져서 더 와닿았다. 스나이퍼 같은 장총을 들었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전사 같고 멋있어서 좋았다. "I'm on top, 사실 on the cliff" 부분에서 계단처럼 밟아 올라가고 떨어지는 안무도 제일 인상 깊었다. 그냥 싫은 게 없고 다 좋은 노래다. If We Do는 재즈 느낌이 나는 곡이고, 형용할 수 없게 좋아서 좋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바라던 바다는 눈물이 나는 노래다. 가사도 그렇고, 세정언니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벅차오르는 기분에 마음이 일렁이고 눈물이 난다. 권태기의 노래는 덤덤하게 삼키자고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시큰해진다. 덕질에 권태기란 없다. 모르고 그려도 서로를 그리다는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세정언니를 모르고,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세정언니를 좋아하게 됐을 거라는 그런 생각. Jenga는 가사가 재밌다. 젠가와 쟨가?라는 중의적인 표현도 그렇고 버블이 pop 터진다는 말과 Who's gonna fall down이라는 가사가 재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젠가의 블록이 무너지는 소리까지 시원하고 좋다. Indigo Promise는 커튼이 바람에 살랑이는 새벽 같아서 편안하고 기분도 좋다. 편지를 보내요는 들을 때마다 세정언니한테 편지 쓰고 싶어진다. 언니에게 오늘은 어땠고, 뭐 했고, 어떤 생각이 들었고, 언니가 보고 싶다고 말이다. 빗소리가 들리면은 감히 다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고 벅찬 감정이 든다. 세정언니의 다짐 같아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빗소리가 들리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언젠가 무지개를 건너야 할 때는 보내준 강아지들이 떠오른다. 주인은 아니었지만, 그 기억에 존재한 나는 어땠을까, 좋은 사람이었을까? 싶어서 아쉽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글이 올라가고 난 다음 날이면, 세정언니의 첫 단독콘서트가 열린다. 비록 보러 가진 못해서 아쉽지만, 덕질 노잼시기를 재밌고 다채롭게 해 줘 고맙고 늘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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