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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Sep 19. 2023

24화 -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나에게 구세주처럼 뮤즈가 등장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일단 한 줄이라도 적은 기억이 많았다.


그 사람이 바로 배우 이종석이다.


이종석 / 출처 : 하이지음스튜디오 공식사이트


처음에는 쓰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학교 2013 때였다.


고남순이 극 중에서 학교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읽어주는 부분이 있다. 그때 시가 이런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위로와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게 큰 충격이었다. 편지보다 더 큰 울림을 받았었는데,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순간 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의 찬미를 보고 나서였다. 2019년에 어쩌다 사의 찬미라는 드라마를 알게 됐다. 보기 전까지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망설였는데, 보고 나서는 몇 번을 더 찾아볼 정도로 좋아하는 드라마가 됐다.


그 당시에 드라마를 보며 동명의 제목으로 시를 적었었다.


<사의 찬미>


죽음도 마음대로

삶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꺼져만 가는 이 내 마음

어딘가에 둘 곳 하나 없구나


살아서 뭐 하나

죽는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한탄만 하던 나는

비로소 당신을 따라 걷는다


거칠게 흔들리는

파도가 우리를 환영하는구나


이젠 쉬어야겠다

당신과 맞닿은 손을 꼭 잡고서


무엇도 두렵지 않구나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죽음이 다가와도

삶이 멀어져도 다 괜찮다


드라마를 보고 김우진의 시점에서 적어본 것이다. 배 위에서 손 잡고 걸어간 뒤, 갑판 위에 나란히 놓인 신발 두 켤레가 불안하고 어지러운 배 위에서 유일하게 행복해 보였다. 가지런히 놓인 것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시 쓸 때, 같이 녹여내고자 한 대사가 있다.


"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제 생각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는 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께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제발 숨 좀 쉬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투신하는 이때, 저는 아버지 뜻을 따라 아주 비겁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글로나마 그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글로나마, 글로나마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에 알량한 몇 자 적는 걸로 숨통이 트이는 제게 그마저도 관두라 하시니 여쭙습니다.


아버지는 대체 저더러 살라는 것입니까. 죽으라는 것입니까."


1920년대, 잘 사는 집의 도련님이지만 그게 너무 부끄럽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자 적은 글을 아버지가 모두 태워버리라 한 상황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살고자 쓴 글도 안 된다고 하니 이도 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무력하고 답답했을 심정을 녹여보려고 했다.


​"이제 알겠어요. 선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선생은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쉬고 싶었을 거예요. 아주 편안히. 


나는 이제 좀 쉬고 싶어요. 정말이지, 너무 지쳐버렸거든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요. 당신이 너무 그리울까 봐 두려워서.


나는 선생이 삶으로부터 도망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선생은 살고자 했던 겁니다. 가장 자신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뿐이에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볼 생각이에요. 설령 그 삶이 곧 생의 종말일지라도. 그러니 당신도 편히 쉬어요. 내 곁에서."


우진이 심덕에게 얘기하는 부분에서 '죽는 건 떳떳하지 않고, 두렵기도 했으며, 도망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걸 유추해 봤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우진의 마음과 심덕에 대한 사랑을 잘 녹여보고자 했다.


다르게 적은 것도 있고, 이종석 배우를 생각하며 써본 글도 있다.


<사의 찬미 2>


내 몸이 떨어질수록

붉게 타오른다


타오르는 빛이 환할수록

죽음이 가까워온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아름답게 빛난다


빛이 날수록

누군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죽음이 아름다울수록

모두가 숨죽인 채 바라본다


땅에 가까워질수록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져 간다


내가 부서져 갈수록

이 세상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을수록

삶이 있었기에 죽음이 이토록

찬란하고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위의 사의 찬미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적은 것이다. 이 시 역시도 드라마를 보며 적었지만, 죽음을 별에 빗대서 쓴 거였다.


이종석 배우를 생각하며 쓴 글은 향수를 통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향으로 그리웠던 기억을 불러와 주는 향수 가게 이야기다. 자극적인 내용이 없어서 썼을 당시에는 다들 별로라고 했던 거라 놔두고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다시 수정하고 발전시켜서 공모전에 낼 수도 있는 거니까.


잠시나마 뮤즈가 되어준 이종석 배우님 덕분에 글 쓰는 게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도, 소설도 쓰는 게 덕질처럼 즐거웠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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