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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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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Oct 03. 2023

28화 - 듣는 귀만 높아지는 덕질

같이 있는 사람들이나 주변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로 갑자기 눈이 높아진다거나 기준점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덕질로 듣는 귀만 더 높아지고 있는 거 같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가수 김재환이다.


출처 : 김재환 공식 엑스(트위터) 계정


재환오빠를 알게 된 건 나야 나!를 외치던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아니라 보컬전쟁 : 신의 목소리라는 SBS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처음 본 장면은 프로듀서이자 심사위원인 윤도현 님 앞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 서면을 부르는 것부터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다는데, 밴드 보컬을 해도 되고, 솔로로 나와도 될 정도로 실력이 좋게 느껴졌다. 아이돌만 수없이 좋아해 온 내 덕질 데이터로는 이미 아이돌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만약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가창력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오지 않자 잠시 잊혀진 듯 했던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프로듀스 101 시즌 2였다. 소속사에서 자꾸만 일본으로 스케줄을 보내는 바람에 국내의 인지도와 입지가 부족했던 아이돌이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가창력은 당연히 A등급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봤다.


시작부터 메인보컬로 자리를 잡은 게 느껴졌다. 시원한 탄산음료 같은 보컬에, 어딘가 귀여운 얼굴, 허당에, 백치미가 느껴지지만 착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성격까지... 어디선가 팬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갈 거 같아?"라는 소리에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데뷔하지. 하고도 남아. 춤이야 차차 늘어가면서 성장 스토리도 쓰고 그래야 인간적이잖아."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개인 연습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4등으로 데뷔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내가 된 것도 아닌데, 너무 기뻐서 육성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었다. 물론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분명 잘했을 거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아이돌이 되었다. 워너원라는 팀과 메인보컬이라는 포지션이 생겼고, 워너원의 어엿한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분명 춤이 힘들었을 텐데도 아랑곳 않고 연습한 결과는 대단했다.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잠도 안 자고 연습했을지 짐작이 지 않았다.


워너원의 활동이 끝나고, 예상했던 대로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안녕하세요. 처음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봤어도 오늘이 되면 건네는 익숙한 인사말이다. 노래의 안녕하세요는 헤어진 연인과 다시 모르던 때로 돌아가서 안녕하세요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뜻이다.


헤어짐도, 새로운 만남에도 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노래의 제목, 시간이 필요해. 안녕하세요가 이별의 1단계라면, 이 곡이 2단계가 아닐까 싶다. 이별했다는 걸 점점 받아들이고 있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에 전 애인을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한 거 같았다. 안녕. 어색하게 건네는 두 글자이자, 떠나보내는 인사 같았다. 이제 이별의 수용이 끝나가는 건가 싶었다.


안녕 못 해라는 제목을 보고 수용이 부정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너 없인 안녕 못 해 더는 아프기 싫어 정말 힘들기 싫어 숨도 못 쉴 만큼 아직도 너무 그리워" 가사가 마음을 바늘처럼 찔러오는 것처럼 아팠다. 듣기 전에 신나고 가벼운 노래를 많이 듣고 들어도 슬퍼서 힘들었다.


지쳐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제목, 찾지 않을게. "아프지 아니한 게 아냐 그냥 아픔에 난 익숙해져 가 아파서 우는 것도 아냐 나도 모르게 또 흐르는 거야" 이 부분이 제일 공감됐다. 무뎌져서 아픔이 덜 느껴지는 것일 뿐, 아프긴 매한가지니까.


새까맣게. 마음이 모든 힘을 쏟아붓다가 결국에는 다 타버린 모양이다. "새까맣게 다 타버렸어 사랑이 흔적도 없어 대신 이 맘 속에 겨우 남은 우리 추억이 너를 기다리게 해" 재 대신 남겨진 추억이 마음의 자리를 켜켜이 쌓아서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으로 자라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다가 그 사람의 이름이나 그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 물을 때면 문득 떠오르는 말, 다 잊은 줄 알았어. 너무 공감되는 노래라 멍하니 듣다가 운 적도 여럿 있었다. 바빠서 여유가 없으면 잊은 것처럼 살게 되지만, 잊은 게 아니라 잊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중인 것이다.


이별 후의 모든 과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했다. 한 편의 이야기 같고, 노래를 들으면 영화나 파노라마처럼 장면들이 그려졌다. 듣는 귀가 더 성장해서 못 듣는 노래들이 많아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될 정도였다.


달팽이는 재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너에게로 느리지만 닿아보려 노력하겠다는 결심이 느껴졌다. 들으면 들을수록 괜히 응원하고 싶고, 노래도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이 몽글몽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그런 노래라서 듣기 좋고, 언제 들어도 편안하다.


그 시절 우리는은 제목만 놓고 봐도 추억을 떠올린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추억으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수많은 꽃들 사이 넌 아름다웠다 다시 한번 아프게 널 불러 봐도 돌아갈 수 없다 너에게 두 번 다시" 가사는 시 같아서 아름다운데, 아프기만 하다.


봄바람은 시린 추억만 남기고 떠났나 보다. "이내 겨울도 봄이 오겠지 흐드러지게 핀 벚꽃 잎 따라 흐르는 강물에 몸을 싣는다 봄바람이 소식을 말해줄까 그대 생각이 분다 바람이 운다" 이별의 단계가 마지막에 다다른 건가 보다. 가사는 시적이고, 노래는 더 좋아진다. 듣는 귀를 더 행복하게 만족시키겠다는 듯이.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신나고 장난꾸러기 같은 노래로 돌아왔다. 개이득. 재환오빠 그 자체인 노래라고 생각한다. 귀엽고 유쾌하고 장난기 어린 노래지만, 보고 듣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신나고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바라보는 김재환이라는 가수다.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이제 정말 마음에 봄이 왔나 보다. 썸에서 연인으로 변화하고 싶은 관계의 사람들이 들으면 더 좋을 노래다. 듣기만 해도 연애세포가 샘솟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듣는 귀의 기준치를 더 높여줄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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