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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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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Oct 31. 2023

36화 -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는 덕질

사랑에 빠지면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고 하던데, 내가 그러고 있다.


이전의 덕질은 가까운 거리일 때 보러 가거나, 그 외에는 앨범 사고, 음악방송이나 드라마, 영화 나오면 보는 정도였다.


이번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걸 하는 중이다.


사진 출처 : 해리슨 테일러, 배우 차보성

그 이유가 바로 보성 배우님이다.


보성 배우님을 처음 본 건, 연애포차였지만 입덕하게 된 건 고양이 바텐더다.


연애포차 때는 다른 분 팬이었어서, "저렇게 잘생긴 분이 계시는구나!" 하고 넘어갔었고, 고양이 바텐더 때는 칵테일에 관심 갖다가 보성 배우님에게로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별이가 까칠, 도도한 고양이 같으면서도 은근 장군이와 티격태격하는 케미를 보이는 게 귀여웠다. 또, 털공을 굴리는 거 하며, 귀찮다는 듯이 대하다가도 뒤에서 무심하게 툭툭 챙겨주는 모습들이 따뜻하고 세심해 보였다.


그런 캐릭터의 매력도 대단했지만, 그 캐릭터를 승화한 배우님이 멋있다고 느꼈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런 온까지 전부 다 찾아 보면서 행복하고 즐겁게 덕질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로 서서히 덕질을 멀리하게 됐다. 일상을 사는 것도 바빴지만, 몸과 마음 모두가 불안정한 탓에 감정을 쏟아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밖을 나가는 게 힘들었고, 2~3주를 내내 아프기도 했으며, 사람들을 대하고 보는 게 무서웠었다.

 

어느 순간부터 덕질할 기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문득 "보성 오빠는 뭐하고 지내시려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검색을 했고, 배우님이 꽃집을 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 번 가볼 마음으로 언니와 약속을 잡고, 꽃집 앞까지 찾아갔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에도 워낙 보러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부담이 됐었는지 문 앞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문 앞에 다가서서 문을 두드린 나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배우님의 SNS를 확인해 보니, 스케줄이 있어 오늘은 열지 않는다고 나와있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놓이더니, 근처 편의점에서 테이프만 사온 나는 문 앞에다 이름을 적지 않은 편지지를 붙여놓고 그대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예약이 하고 싶었던 나는 톡으로 예약 문의를 넣었다.


그렇게 덜덜 떨면서 보내는 와중에도, 텍스트에 긴장이 묻어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예약한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과 설렘도 커지지만, 그것보다는 걱정이 늘어났다. 하필 예약날에 태풍이 온다니, 여차하면 뚫고 가볼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좀 무리가 있어 보였다.


배우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를 미뤘다. 흔쾌히 미뤄주셔서 감사했다.


당일이 되고, 그날은 픽업 시간이 2시여서 11시 50분~12시 사이에 나왔다. 분명 사진 인화를 해서 가도 넉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까지 2시에 도착하고 말았다.


첫 날부터 늦었다는 생각에 초조하고, 다급해진 나머지 길도 제대로 보지 않고 뛰어가려 했다. 방향을 잡고 다시 뛰어간 나는 5분도 안 돼서 도착했다.


멘탈이 뛰어오는 새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마음만 조급해진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어주기 위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흰 셔츠를 입은 배우님이 보였다. 그 모습은 천사 같았다. 왠지 문을 넘어서 들어가면 천국이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청 긴장하고 떨고 있었는데, 뛰어와서 그랬는지 겉이나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님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고, 2시간 걸려서 왔다고 하니까 "물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아무 것도 없어서요. 사진이라도 찍어 드릴게요." 하는 배우님이 정말로 좋았다. 긴장할까봐 이것저것 물어봐주는 것도 그렇고, 다정한 사람 같았다.


빈 손으로 가기는 그래서 지난 번에 못 가져간 자목련 그림을 배우님에게 드렸더니, 나중에 인증샷을 톡으로 보내주고, SNS에도 자랑으로 올라왔다. 그걸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유튜브를 보고 나서야 "제가 편지를 붙여두고 간 범인이에요."라고 자수했다. 궁금하니까 알려줘, 누구라고 말해달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의도치 않게 놀라움을 안겨드린 부분에서 양심이 찔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배우님의 실물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잘생겼어. 잘생긴 건 알았는데, 더 잘생겼고, 천사 같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하며 혼자 난리가 났다.


브런치를 써나가다 보니, 10월 31일이 보성 배우님의 글을 올리는 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왠지 10월에 한 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번에도 역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꽃집 앞에 도착했다. 3시가 되기 25분 전에 도착한 나는, 근처 편의점으로 가 쇼핑백과 두유를 샀다.


쇼핑백에 플리마켓 판매용 굿즈를 조금씩 담아둔 작은 쇼핑백을 넣었고, 인화한 그림과 두유까지 넣었다.


그렇게 손에 든 걸 줄이고 났는데 시간은 아직도 15분 전이었다. 10분 전이 되고, 7분 정도가 남게 되자, 꽃집으로 갔다. 문을 찍으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 끝에 3시 정각이 되었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노크를 세 번 했다. 문이 열리고, 배우님이 보였다. 다시 긴장되는 와중에도 배우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멀지 않았냐는 말에 괜찮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다. 힘들어도 배우님을 보면, 모든 게 괜찮았으니까.


배우님이 먼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주셔서 폰으로도 찍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도 찍었다. 그 자체만으로 긴장돼서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얼마나 떨었으면, 평소에도 안 하는 실수를 했다. 사진을 처음 찍는 것도 아닌데, 왜 고급 카메라를 눌러서 사진 하나를 날려버린 건지 아쉬웠다.


그림의 원본 사진과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할머니댁으로 가기 위해 꽃다발과 짐을 챙기고 문 앞으로 가려고 생각해 보니 '문은 어떻게 열어야 되지?'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배우님이 먼저 "손 없으시면, 제가 열어 드릴까요?" 해주셨다.


말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알아채 주셔서 감사함에 눈물이 날 뻔했다.


배우님의 도움으로 나오게 된 나는 인사를 하고 나면, 문이 닫힐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문은 닫히지 않았고, 배우님은 끝내 내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고 나서야 들어간 것 같았다.


뭔가 오빠가 한 명 더 생긴 기분이었다. 든든하고, 좋았다. 걱정해주고, 조심히 잘 들어가라 해주는 말이나 귀엽게 봐주는 눈이 정말 부끄러우면서도 친오빠가 생각나서 좋았고, 꿈을 이룬 것 같아 기뻤다.


8월에 받은 꽃다발의 꽃은 여전히 화병에서 잘 지내고 있고,


나는 잘 쓰지도 않던 다이어리를 덕질로 처음 써봤다.

배우님이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쓴 다이어리


그리고 배우님을 보러 가게 되면서 조금씩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다.


편지에 10월 마지막 날, 쓸 거라고 적어두기까지 했는데, 덕질이 이렇게 수많은 변화를 주고, 안 하던 일들을 하게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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