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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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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Nov 07. 2023

37화 - 덕질하게 된 이유

오늘은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를 보며 떠오른 걸 쓰고 싶어져서 덕질했던 연예인이 아닌, 덕질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처음 덕질하기 시작했던 건,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의 연예인들이 반짝이며 빛을 내는 순간들이 아름다워 보여서였다.


연예인들을 흔히 '스타'라고 표현하는 게 과장되거나 거짓이 아니라는 걸 일찍이 깨달았던 게 분명했다.


보고 있으면 마냥 좋았다. 계속해서 빛을 내뿜으며 행복한 얼굴로 무대를 하고 있는 모습은 나까지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덕질이 심해진 건 앞에서의 일기들에도 나와있듯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내가 어두워지는 게 느껴져서 그 사람들을 보면 조금은 밝아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고, 노래에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생각만큼 큰 변화는 없었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을 따라 성격이 조금씩 변하는 건 있었다. 닮아간다는 그 자체로 충분했다.


그렇게 깊이 파고 들다시피 한 덕질은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고, 힘들어도 버텨내겠다는 의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는 내 아이돌이 먼저가 되고, 나조차 나를 챙기지 않는 시간들이 생겨났다.


그런 덕질에 회의감을 느낀 적이 있고, 덕질을 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생각해야겠다는 걸 다짐한 게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탈덕을 처음 얘기한 순간이었다.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실은 끊으면 되고, 엉킨 걸 풀고, 끊어진 걸 다시 맺으면 되지만, 덕질은 그냥 그 연예인의 인생 어느 한 순간을 스쳐 지나간 과거의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게 서글프기도 하고, 두려웠다. 이별을 앞둔 연인처럼 말이다.


일들이 연속으로 터졌고, 그로 인해 감정 소비가 커지는 탓에 지쳐갔으면서도 그만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지금껏 살던 대로 내 삶을 사는 것뿐인데,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하던 연예인 없이 산다는 게 어려웠다. 아마도 그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져서 그 전의 생활을 잊은 것 같았다.


그동안 해온 덕질의 양이나 기간을 생각하면 잊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여러 연예인들을 동시에 좋아한 건 아니지만, 좋아하다 보니 많은 연예인들을 좋아하게 된 건 있다.


그건 외로워서라는 말이 이유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으면 많을수록 공허한 마음과 조용한 세상을 채워줬다.


조용한 회색빛의 세상에 비가 내리고, 햇살이 비추고, 바람이 부는, 그런 다양한 색채의 세상들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 있어서 외로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글을 쓰게 된 이후부터는 그들이 나의 뮤즈가 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난 뒤로는 더 잘 그리고 싶게 하는 열정이 되어주기도 했다.


앞으로의 인생에 큰 이변이 없는 한 덕질은 계속되겠지만, 더는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하거나 내 삶이 없고, 나를 챙기지 않는 덕질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의 덕질처럼 내가 힘들 덕질은 놓아버리고, 행복할 덕질만 골라서 내 삶과의 균형을 지키는 그런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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