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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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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Nov 10. 2023

38화 - 찢어진 우산

평범하고 멀쩡한 우산일 줄 알았다. 비가 와도 빗줄기를 막아주고, 옷자락 하나 적시지 않을 그런 우산인 줄 알았다.


출처 : 솔트엔터테인먼트, 배우 김선호


1박 2일을 보면서 늘 일주일이 흘러가는 걸 느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웃음을 보는 게 즐겁고, 아무런 걱정 없이 웃게 되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 사람을 처음 보게 된 건 김과장에서의 어수룩한 막내 사원이었다. 최강 배달꾼투깝스까지 봤지만, 그냥 보고 지나간 게 다였다.


백일의 낭군님부터 그랬던 것 같다. 캐릭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서브병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본 게 으라차차 와이키키 2였다. 특히나 운석이 떨어져서 천장에 구멍이 난 걸 안 보이게 막아보겠다고 집주인 분과 연애 아닌 연애를 하는 일화가 너무 재밌었다. 화들짝 놀라고, 무서운 아들들 등쌀에 겁먹은 표정까지 모든 게 웃겼다.


유령을 잡아라는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마켓에 홍보차 나온 두 주연 배우님들을 보고 나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긴 하지만,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봤던 풍경들이 색다르게 느껴져서 재밌었다. 웃겼던 포인트는 신입 때문에 고통 받아 하면서도, 없으면 되게 신경 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마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1박 2일 시즌 4를 보면서 좋아하게 됐다. 동생의 순수함을 지켜주고자 하는 형의 모습도, 키 작은 동생을 놀리면서도 귀여워 하고, 무엇보다 형들을 많이 아끼고 좋아하는 그런 진심 어린 모습들이 다정해 보였다.


스타트업은 보는 게 즐거웠다. 투자나 코딩, AI 등 알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있었지만, 도산이와 달미한테 등 터지는 지평이의 모습이 즐거웠다. 달미 온다고 삼산텍 사람들에게 옷과 사무실도 빌려주고, 김장에 화투까지 즐겁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갯마을 차차차는 모든 게 좋았다. 홍두식이라는 캐릭터도, 두식이를 아껴주는 할머니들과 마을 사람들까지 그냥 사람 냄새가 가득해서 보는 내내 따뜻하고 행복했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던 혜진이가 점점 가시를 내리고 자신을 편히 내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출연한 배우 분들의 관계도 그래 보여서 좋았다. 가족이자 친구처럼 서로를 응원하고 아끼는 그런 든든한 사이.


그렇게 드라마를 보고 끝난 걸 확인한 어느 날, 난리가 났었다. 그때 팬들도 다들 많이 술렁거렸지만 그동안 봐온 배우님을 봐서라도 다같이 잘 버텨내 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1박 2일 시즌 4의 다른 팬들이 조롱하고, 욕 해도 괜찮았다. 그런 건 전혀 아프지도 않았고, 배우님 걱정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이 시기를 잘 버텨서 우산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많은 비난을 혼자 감당해야 할 배우님에게 우산이 되어 빗방울에 젖은 옷과 머리가 마른 뒤에는 용기를 내어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잘 버티고 있었는데, 같이 덕질하던 사람들이 점점 하나씩 사라지게 되는 걸 보게 되니 불안해졌다.


전전긍긍하면서도 배우님이 광고한 마스크 회사의 마스크를 구매하고, 손소독제를 구매하며 포토카드를 모으는 날이 계속됐다.


가장 친하게 지낸 덕질메이트가 떠나가자, 괜찮은 줄 알았던 나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무기력했다. 막으려고 해 봐도 해를 손으로 가리는 것 밖에 되지 않았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그 사실은 정말이지 바닥을 나뒹구는 나뭇잎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리저리 나뒹굴며 돌아다니다가 어딘가에 구르고, 걸려 찢어지고 말았다.


난 그저 배우님의 우산이 되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내가 찢어진 우산이었다는 게 허무했다.


그 이후로 팬을 그만 두게 되었다.


그래도 다시 활동 재개하고 팬들을 만나는 모습은 여전히 보기 좋았다. 그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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