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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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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Oct 17. 2023

32화 - 어쩌다 덕질한 그대들

왜 덕질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느 팀이었고, 어디 나왔던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덕질할 생각은 없었다.


출처 : 뮤직웍스 공식사이트, 비오브유(송유빈, 김국헌)


비오브유로 다시 데뷔했던 김국헌, 송유빈을 덕질하게 된 건 프로듀스 X 101이 끝나기 무렵이었을 때였다. 혼자 방청을 신청해서 당첨된 나는 더 웨이브라는 프로그램을 보러 가게 됐다.


그냥 내 아이돌이 아니라도 그저 아이돌의 무대가 보고 싶어서 갔던 그날, 김국헌과 송유빈을 보게 되었다. "곧 있으면 저희 팬미팅을 하는데,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보러 와주세요!"라고 패기 넘치게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마침 김국헌을 덕질하던 언니와 함께 팬미팅까지 보러 가게 됐다.


팬미팅 장소는 오르막길이 어마어마했다. 언니랑 올라가면서 왜 이리 높은 곳에 있는 거냐고 투덜거렸지만, 대학교 강당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미팅이 끝나고 나서도 가라는 말이 없어 의아해하던 찰나, 하이터치회가 시작되었고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모두가 화장품을 꺼내서 얼굴에 바르는 모습이 좀 놀라웠다. 안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출입구 쪽에 서서 팬들과 손을 맞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간단히 대화도 하는 걸 보고 목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자 내 차례가 다가왔다.


사람이 입체감 있게 생기고 키가 커서 좀 놀랐는데, 바로 앞에서 보고 있으려니 손에 땀이 자꾸만 났다. 순간적으로 "제가 손에 땀이 많아서~" 하는 설명 대신 강아지가 손을 주는 것 마냥 올리고 만 것이다. 약간 놀란 것 같았지만, "감사합니다."라고 해주는 유빈님을 보며 나도 같이 "감사합니다."라고 해버렸다. 속에서 깊은 한숨과 함께 바람이 되고 싶어졌다.


유빈님을 지나 국헌님을 봤을 때는 토끼 인형처럼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조금 평온해진 것 같지만 마찬가지로 땀이 자꾸만 흘러서 강아지마냥 손을 척 올리고 말았다. 강아지의 앞발 크기를 생각하자면, 3분의 1 정도에서 큰 차이가 없긴 한 거 같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손을 척 주고, 감사합니다만 연발하고 온 나는 부끄러움에 도망치듯 나왔다. 서로 팬미팅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보니 언니도 흑역사를 좀 만든 것 같았다.


그 흑역사가 도화선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느새 그 둘을 덕질하는 팬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은 광화문 광장 쪽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티켓팅을 하게 되었다. 언니는 좌석으로, 나는 스탠딩에 있게 됐다. 그나마 알고 지낸 팬 사람들과도 떨어지게 된 탓에 조금 의기소침했던 것도 같지만, 두 사람이 나오자 텐션이 살아나서 응원봉을 마구 흔들었다.


무대가 끝나고 나자,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체력이 방전된 채 뒤로 나온 나는 바닥에 앉기 직전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냥 털썩 앉아버렸다.


언니는 집으로 간 건지 묻고 싶어서 연락을 해보니 답이 없어 화장실 가는 척 밖으로 빠져나왔다. 좌석 쪽에도 언니가 안 보여서 나도 그대로 집에 갔다.


차 끊기기 2시간 전에야 간신히 집에 도착했던 것 같다.


열애설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그게 뭐 어떠냐는 마음으로 덕질했고 비오브유로 데뷔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다.


어쩌다 덕질하게 된 것 치고는 진심이었고, 몇몇 팬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덕질을 그만둔 건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뒤에서 남들을 까고 욕하며 떠드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덕질메이트가 있어서 덕질이 더 재밌었던 건데, 그것까지 못 하게 되어버리자 질려버리고 말았다.


이상한 말과 욕을 듣고 상처받은 나는 그 팬들과 교류하던 계정을 지운 뒤, 팬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마 뒤늦게 깨달았을 테지. 그 친목으로 인해 못 껴서 떨어져 나가는 팬들보다 흙탕물로 더럽히는 꼴이 보기 싫어 떨어져 나가는 팬들이 더 많고 빠를 거라는 것을.


어쩌다 시작된 덕질은 비록 끝이 아쉬웠지만, 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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