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덕질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후감 Nov 24. 2023

42화 - 혐관이 덕질로 변하다

'혐관'은 주로 로맨스의 관계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혐오하는 관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 로맨스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일방적인 혐관으로 출발해버린 덕질이었다.


42번째 일기의 주인공은 배우 황인엽.


출처 : 배우 황인엽 인스타(@hi_high_hiy), 캘빈클라인

황인엽 배우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드라마 18 어게인에서였다. 처음 보자마자 '모델 출신이신가? 왠지 모델업계에서 굉장히 좋아할 얼굴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역시나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드라마를 보다가 기분이 확 안 좋아지고 말았다. 밥도 제대로 못 먹게 괴롭히는 그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배우님에 대한 궁금증은 그날부로 저 멀리 날아갔다.


집에서 받은 상처는 이해가 가지만, 그 분풀이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진저리칠 정도로 싫었다.


나중에 조금 철이 드는 것 같긴 했지만 싫은 건 싫은 거였다.


시간이 지나고 잊어가겠지 싶은 어느 날, 드라마 여신강림이 시작했다. 웹툰을 본 적은 없었지만 인기가 대단했다는 건 알고 있어서 호기심도 해결할 겸 보게 됐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황인엽 배우님이 나오는 걸 보고, 고민했다. 계속 봐야 할 거고, 그건 캐릭터일 뿐이라 생각하며 앉아서 쭉 보게 되었다.


이전 드라마의 캐릭터와는 달리 선을 넘는 모습이 없고, 은근 허당이어서 조금씩 웃으면서 바라봤다.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서브 남주인 서준이를 응원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한서준을 연기하는 황인엽 배우님도 조금씩 좋아지게 됐다.


동생을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오빠의 모습도 의외였다. 뺀질거릴 것 같은 모습인데, 속은 또 따뜻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여주의 비밀을 알고도 막아주려 노력하는 게 멋있고 귀엽게 보였다. 나는 그렇게 입덕하고 말았다.


몇 달 사이에 싫어하다가 좋아지게 된 이 상황이 신기하고 얼떨떨했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황인엽 배우님이 향수 모델로 발탁된 걸 보고, 바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여러 향수들이 있었고, 구경만 하고 나왔다.


한 달이 지나고, 포토카드를 주는 이벤트가 뜬 걸 본 직후에 바로 구매했다. 여러 향수가 들어있는 세트였는데, 지금은 선물로 나눠주거나 다 써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셀러버 쉬폰향수 1994 마틸다 사진

보랏빛의 영롱한 병이 예쁘고, 향도 좋아서 외출할 때 가끔 뿌리곤 한다. 따뜻하면서도 약간 달달한 꽃향기가 머스크 향과 함께 느껴진다. 아침에 맡으면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머리 아프도록 기분 나쁘게 독한 향수들이 많은데, 여기는 은은하게 나서 뿌리자마자 맡아도 기분이 좋다.


포토카드도 분명 화이트 톤으로 받은 기억이 있는데, 어디에 있는 건지... 찾다가 포기했다.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는 방송 될 때까지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기다렸다. 현진언니와 인엽 배우님의 케미라니, 너무 기대됐고 상상만으로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방송이 되고 나서는 꼬박꼬박 챙겨보거나 너무 졸려서 못본 날은 재방송을 봤다.

보면 볼수록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본다고 이해되지 않던 게 바로 풀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안나라수마나라는 원작의 웹툰을 찾아서 본 후에 보기 시작했다.

조금씩 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외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는 전화 한 통으로 집안은 난리가 났고, 누구보다 속상할 엄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던 나는 꾹 참아냈다.

아빠는 엄마를 태우고 검사 중인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집에 남아서 혼자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아내고서는 안나라수마나라를 봤다.

불안감을 잊고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슬픈 장면이 나온 탓에 애써 누른 눈물이 다시 울컥 차올랐고, 보는 내내 울었다.

운 걸 들키지 않으려고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냈다. 그렇게 티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시대. 수술도 잘 끝나셨다니까 걱정 말고, 아빠는 엄마 데리고 집으로 갈게. 잘 기다리고 있어."

그 말에 불안은 따뜻한 봄날을 맞이한 눈처럼 사라졌다. 안도감에 다시 울음이 터졌고, 티비에는 인엽 배우님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도 좋았고, 들려온 소식의 결과도 좋아서 너무나 기뻤다.

며칠이 지나서 다 보게 되자, 아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인엽 배우님을 좋아하지 않았고, 안나라수마나라를 알지 못했더라면 혼자 기다려야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친구 같은 드라마를 떠나보내려니 너무 아쉽고 속상했다.

생각날 때면 지금도 인엽 배우님의 노래를 찾아 듣곤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싫어했는데, 지금 이렇게 쓰고 보니 좋아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41화 - 하루에 세 번 부르는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