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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덕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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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감 Dec 05. 2023

45화 - 12년 만에 탈덕을 결심하다

※16화의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덕질을 시작할 때는 모든 사랑이 그렇듯 설레고,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돼서 벅차오르지만 끝은 늘 그렇다.


전 멤버가 술을 마신 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다 말을 잘못한 그날, 팬카페가 뒤집어졌다.


그 이후로 팬들은 그 멤버를 지지한다, 지지하지 않는다로 나뉜 채 싸우기 바빴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감정 소모가 평소보다 몇 배로 심했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알게 된 뒤로 더 두고 보기가 힘들어져서 결국 글 하나를 올리게 되었다.


그 글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몇 명을 지지하던 그건 그 사람들의 자유고, 탈퇴는 회사가 상의 하에 결정할 일이지 우리가 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싸우면 아이돌과 소속사 직원들이 볼텐데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었다.


그 글에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그 글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이유가 뭐든,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건 확실했다. 나는 그날부로 팬카페를 탈퇴했다.


그렇다고 팬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과 최애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팬카페를 탈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멤버도 팀에서 탈퇴하고 소속사에서도 이름이 지워졌다.


이 일로 인해 팬들을 좋게 볼 수가 없어졌고, 아이돌만 보면서 조용히 덕질을 하게 되었다.


멤버들이 하나 둘 군대로 가게 되면서 군백기가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예능에서 하차하며, 군대 잘 다녀오겠다던 최애가 뉴스에 나온 그날은 세상이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몰래카메라라도 찍고 있는 줄 알았다.


며칠 전에 멤버들이 콘서트 하고, 노래도 냈었던 기억이 생생해서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었다.


허탈함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댓글 하나가 잊었던 기억 속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군대에 관련하여 문제가 터진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아는 사람들에게만 퍼져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최애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넘겼었는데, 그 댓글이 이렇게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상심한 만큼 멤버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일부 팬들의 저격 대상이 지금껏 자기 몸 아끼지 않으면서 팀을 지키려 애써 온 리더에게로 향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배우로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리더가 자기 팀의 이름보다 더 유명해지는 게 질투나고 싫었던 건지, 자기 팀 멤버들은 챙기지도 않고 같이 활동도 안 하면서 연기 활동은 꾸준히 하는 게 싫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속사에서 사과해야 할 일을 리더가 대신 사과하고, 허리 통증으로 파스 붙이면서 활동한 것도, 엄마처럼 멤버들을 챙긴 것도, 연기와 병행하면서 팀 이름을 알려온 것 등등.


그 모든 게 책임감이자 리더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하고 싶은 게 뭐든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최애가 사회면에 나온 건 내가 탈덕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다. 핑계로 얘기할 뿐이다. 내가 진심으로 탈덕을 결심한 건 아이돌이 아닌 같은 팬이다.


리더를 저격하고, 개인 활동하는 멤버들을 보며 싫은 소리 한 마디씩 거드는 일부 팬들이 싫었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도 싫었지만 지치는 게 더 컸다.


지치지 않아야 덕질을 더 오래 하는데, 그런 모습들을 볼 때면 새우 등이 터지듯 기가 쫙 빨렸고 감정의 소모 또한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는 탓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2년 만에 탈덕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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