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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카테리나 Aug 25. 2023

7화 아몬드, 올리브나무 사이에서 그리스 신들을 만나다

아그리젠토 신전들의 계곡에서 그리스를 탐험하다

아그리젠토는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식민지로 건설된 아그리젠토는 지중해 지역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은 신전들의 계곡을 보러 나선다. 2500여 년의 세월을 견뎌낸 여러 신전이 한 곳에 모여 있다니 궁금하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샛노란 골든 아카시아가 반겨주고 헤라 신전이 보인다. 버스를 타고 아그리젠토로 들어올 때 보였던, 이곳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신전이다.     


신전의 계곡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식민지일 때(그리스 문화의 황금기) 세워진 것으로 1300여 헥타르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교적 보존이 잘된 유적지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은 계곡이란 말은 잘못 이용된 것이고 언덕의 능선을 따라 여러 개의 신전이 배치되어 있다. 

아몬드 나무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신과 인간이 함께 노닐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주노 신전(헤라 신전)

주노(Juno)를 모시는 신전이다. 주노란 로마의 수호신으로 그리스 여신 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 신전의 계곡에서 능선을 따라 동쪽 제일 끝,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신전으로 지붕은 사라지고 기둥만 남아 있다. 

Tempio di Giunone(헤라 신전)

 기원전 460년-440년경 지은 것으로 추측되나 기원전 406년 카르타고의 침입 때 화재로 훼손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복원한 것이 현재 상태인데 벽은 모두 사라지고 25개의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여기서는 모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상으로는 가장 좋은 곳에 자리한듯했다.

헤라 신전 앞에 있는 널찍한 테라스는 예전에는 양이나 어린아이를 신에게 바치는 제단으로 사용됐던 곳이라고 한다. 주노의 신전이 제우스 신전보다 더 높은 곳에 세워진 이유는 왜일까? 풍요를 비는 마음에서 여신을 더 높이 섬긴 것일까?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콩코르디아 신전

Tempio della Concordia
유네스코 로고-콩코르디아신전에서 따왔다고 한다(파르테논신전을 본땄다는 설도 있음-이미지는 위키백과에서 가져옴)

콩코르디아는 하모니(조화)를 주관하는 여신의 이름이다. 그래서 이 신전은 마을 주민들의 모임 장소로 쓰였던 곳이라 한다. 그리스인이 세운 유적 중 아테네 언덕 위에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도 그 아름다움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고 아름답다. 신전이었지만 다른 종교인 교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상태가 좋다. 시칠리아의 햇빛을 받아 황금색을 띤 기둥은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단순한 도리아식 기둥에서 극도로 정제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표현된 건축이다. 대리석이 부족한 이곳에서는 강 인근에서 채석한 석회암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그리스 신전의 정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 건물 왠지 익숙하다. 왜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건물이다. 맞다. 유네스코의 상징을 나타내는 문양이 이 신전 정면 6개의 기둥이 있는 파사드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 한편으로는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했다는 설도 있다)     


고대 신전 앞에 뜬금없이 이카로스가 나타난 까닭은?

콩코르디아 신전앞 추락한 이카로스

고대 신전 앞에 생뚱맞게 청동 조각상이 누워 있다. 날개를 보아 이카로스 상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2011년 폴란드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Igor Mitoraj)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작품전시회를 열었을 때 전시했던 ‘이카로스의 추락(Ikaro Caduto)’이라는 작품인데 전시가 끝난 후 이곳에 기증했다는 것이다. 신전 앞에 신화 속의 등장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 동떨어지게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찰떡같이 조화로워 보인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에게 잡혀 있다가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크레타섬을 탈출하려 하고 어린 아들에게도 작은 날개를 만들어 주고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항상 바다와 태양 그 중간으로 날아야 한다.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바닷물에 젖어 무거워 떨어지게 된다. 또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에 가까워지면 날개가 불타 버릴 수도 있단다. 그러니 적당한 높이로 날고 내 뒤를 잘 따라와야 한단다. 알겠지?”      

그러나 막상 탈출하는 날 이카로스는 스스로 날아오르는 게 신기한 나머지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 밀랍이 태양에 녹고 날개가 떨어지면서 바다에 추락했다. 


이카로스가 떨어져 죽은 바다는 그리스 근처의 이카로스 해라고 부르고, 바다에 떨어져 죽은 이카로스는 헤라클레스가 발견해서 묻어주었다고 한다. 다이달로스가 크레타섬을 탈출해 정착한 곳이 시칠리아의 남동해안 지역이었다고 하니 아그리젠토 지역과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아그리젠토 근처의 젤라(Gela) 지역에서는 다이달로스를 기리는 풍습도 남아 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 신전

 헤라클레스 신전은 기원전 520년경 세워진,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대부분 부서진 상태에서 기둥 8개만 복원된 상태다. 신전 터만 남아 있는 사원들에 비하면 그나마 기둥이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헤라클레스’의 뜻은 여신 ‘헤라’와 영광이라는 ‘클레오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헤라의 영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이다. 그런데 알크메네의 남편인 미케네의 왕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참전해 집을 비운 사이 남편으로 변장해 동침해서 헤라클레스를 낳았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부인인 헤라의 시기로 인해 모진 고난을 겪었다고 하는데 헤라클레스는 억울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쨌든 헤라클레스는 헤라에게 12가지 업을 부과받아 그것을 해결해 나가며 살았다.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껍질을 벗겨 가죽을 걸치고 다녔고 사자머리는 투구로 만들어 쓰고 몽둥이 하나만 든 모습으로 다닌다. 

헤라클레스의 신전은 지진으로 다 무너졌으나 영국 고고학자 하드캐슬경이 8개의 기둥을 복구했다고 한다.      

 어떻게 쌍둥이의 아버지가 다를 수 있지?

Dioscuri 사원(쌍둥이 사원)

Dioscuri 사원(Castor and Pollux) -쌍둥이 사원

디오스쿠리 사원은 4개의 기둥이 부서진 지붕을 이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초 발굴 당시 주변의 잔해들을 잘못 맞춘 것이라 한다. 


신화 속의 쌍둥이는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 사이에 낳은 쌍둥이지만 아버지가 다른 쌍둥이다. 제우스는 이번에는 백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레다를 유혹했다. 쌍둥이 중에 폴룩스는 제우스의 자식이고 카스토르는 스파르타 왕의 자식이다. 레다는 전쟁의 화근이 된 헬레네의 어머니이기도 한데 헬레네와 이들 쌍둥이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제우스의 아들인 폴룩스는 신의 아들이라 불사의 몸이고 카스토르는 스파르타 왕의 아들이니 불사가 아니었다. 전쟁 중 카스토르가 죽자 폴룩스가 제우스에게 청을 하여 둘을 쌍둥이 별자리(Gemini)로 만들어 주었다.  쌍둥이 신전 옆에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제단을 올리던 제단 터가 남아 있다.      


제우스 신전 터

제우스 신전을 두팔로 떠받쳤다는 텔라몬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480년에 카르타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세워졌다. 길이 113미터 폭이 56미터 높이가 20미터로 고대에 세워진 가장 큰 신전 중의 하나라 하는데 지금은 완전히 파괴되어 주춧돌과 형태를 알 수 있는 잔해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둥이라도 남아있는 헤라 신전과는 대비된다. 신전의 대들보를 떠받치고 있는 남자 거인상을 텔라몬이라 부르는데 그 텔라몬 하나가 잔해들 옆에 누워 있다. 거인상의 길이는 약 8미터 정도라 한다. 

아직도 발굴 중이라 하니 언젠가 복원되는 날 그 거대한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유적지 내 카페 주변의 아몬드나무

2,500여 년 전 신들의 나라인 그리스인들의 흔적을 탐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본토가 아닌 곳에서 거대한,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신전을 볼 수 있다니. 시칠리아에 왔다면 아그리젠토는 반드시 와봐야 할 곳이라 생각한다. 콩코르디아 신전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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