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을 것만 같은 자연도 시간에 의해 변화하는데 하물며 연약하기만 한 사람은 오죽할까 싶다.
그럼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변하지 않고 묵묵하게 그대로인 무언가도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가 바라는 위로에 서툰 편이라 그저 침묵으로 위로를 대신하는 편이지만 그저 들어준다거나 그냥 침묵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일까를 불현듯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가장 좋은 위로는 그저 들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될 때가 분명히 있지만 더 정답에 가까운 위로는 감정의 티키타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옆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은 이의 생각과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로 간의 교류(交流) 말이다.
위로가 필요해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대상이 '사람'이어야만 하는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위로와 위안에는 '온기(溫氣)'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내어 줄 수 있는 따뜻함 말이다. 그리고 이 따뜻함은 존재 자체 보다도 말 한마디에서 더 크게 표현되어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들어주기만', '옆에 있어주기만'을 위로로 인식하는 이유는 위로라고 건네어지는 말들이 상대에게는 하나같이 비난 혹은 비판으로 들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말로써 위로를 건네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대가 바라는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침묵을 선택했지만 나는 여전히도 말이 건네는 위로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건넨 모든 말들에는 항상 상대를 위하는 내 진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의 위로가 상대에게 위로로 전달이 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로써 위로와 위안을 전할 때는 자칫 비판과 비난이 되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부정적인 문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상대를 위하는 진짜 마음을 고스란히 담으면 좋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상대를 위하는 위로의 마음이 제대로 잘 전달되기만 한다면 방식이야 아무렴 어떠랴 싶다.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개인으로서는 아마도 힘듦을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이겠지만 사실 위로를 받고 또 위로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다는 건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따뜻해질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