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사의 시 Oct 03. 2021

Gold star 고물 라디오

잊기 싫어 기록하는 기억_2

고물 라디오를 마루에다 옮겨 놓고

'김기덕의 골든 디스크'를 들으며

대청마루 청소를 시작한다.


김기덕 아저씨가 차를 마실 때 들리는

찻잔 소리는 그때의 풍경만큼 참 예쁘다.




우리 엄마의 혼수품 중 하나였던 'Gold star 라디오'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오래된 영화에 보면 여행을 가는 젊은 청춘들의 어깨 위에는 꼭 대형 라디오가 얹혀 있다. 우리 엄마 혼수품인 'Gold star 라디오' 역시 그시대 젊은 청춘들 어깨 위에 얹힐법한 그런 라디오였다.


내가 중학생이 된 직후부터 대학생이 되어 집을 비울 때까지 우리 집 고물 라디오는 나의 차지였다. 내가 음악을 좋아해서라기 보다 그때의 나는 적막이 싫었다. 내 주변의 고요함을 견디지 못했다.

 

마이마이, 워크맨, CD플레이어 같은 소형가전이 등장하던 시기에 'Gold star 라디오'는 모든 장치가 수동인, 투박하기만 한, 이미 한물간 고물이었지만 마이마이도 워크맨도 CD플레이어도 없던 나에게는 그것들과 다를 바 없는 물건이었다.


고물 라디오가 가져다주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김기덕 아저씨가 진행하던 '골든 디스크' 방송이다. 매일 오전 11시에서 정오까지 팝송만 틀어주던 방송이었다. 컨트리 음악, 재즈 음악, 보사노바 음악, 퓨전 음악, 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리사 오노 등등 많은 팝 음악과 외국 가수들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다. 금 내가 알고 있는 팝 음악에 대한 상식은 김기덕 아저씨 덕분이다.  당시 김기덕 아저씨가 알려주는 외국 가수와 팝 음악 들을 작은 노트 한 권에 옮겨 적어놓았었는데 지금은 그 노트도 사라졌다.


고물 라디오가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기억은 HOT와 SES와 지누션 그리고 친구가 선물해준 녹음테이프이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의 앨범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가전이 그 라디오였다. 지금도 앨범 테이프들은 소장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 너무 열심히 들었던 여파로 테이프들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있다.


결국 고물 라디오가 가져다주는 기억은 어렸을 때의 나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적막함이 싫어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던 내 모습.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마음껏 들으며 열정적으로 좋아던 내 모습.


그러니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시간-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공간-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분위기-


그때의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고물 라디오에 묻어 고스란히 지금 나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Gold star 고물 라디오'는 진짜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의 팝송 노트 역시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2009년 이사와 함께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나를 안다. 그것도 아주 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