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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Sep 19. 2021

나는 나를 안다. 그것도 아주 잘-

행동하지 않는 게으른 이상주의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잊어버렸다. 싫증도 슬럼프도 번아웃도 아니다. 그저 글의 소재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을 뿐이다. 감정이 점점 메말라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바다는 꽃 같고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랑이다.




너무나 잘 알지만 행하지 않는다.

원하면서도 원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그저 주저앉아 투덜대기만 한다.

나는 그러면서 정작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정색하고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오늘부터 시작해도 모자랄 일을 항상 내일부터 하자고 마음먹는다.

이상과 꿈을 준비한다는 명목 하에 현실에 안주해 버린다.

행하지 못하면서 하고 말 거라는 다짐과 말은 청산유수다.

모든 일에 대한 변명거리들만 잔뜩 찾아내고 있다.

용기와 자신감은 엿 바꿔먹고, 온통 허풍만 가득 찼다.


10년 전의 나는 행동하지 않는 게으른 이상주의자였다.

10년 후, 지금은 어떤지를 생각해 보지만 변한 건 없는 듯 보인다. 나는 나를 안다. 그것도 아주 잘-


예전의 나는 이런 내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변해야겠다고 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뭔가 특별한 것이 없고,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싫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맹숭맹숭, 무미건조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된 후, 그럼에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실한 목표가 결여(缺如)되어 변하기 위해 애를 써도 방법도 방향도 몰랐다. 무작정 변화만을 추구하다 보니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가면을 쓰고서 관계를 맺고,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다 보니 결국에는 어느 한순간에 내 안에 쌓여있던 폭탄이 아주 제대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를 안다. 그것도 아주 잘- 나는 참을성이 없는, 이중적인, 착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악함을 무시한 체 다른 이들의 시선만을 중요하게 생각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일 땐 다른 나로 살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의 마음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다. 그랬더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들이 하나둘씩 정리가 되었다.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관계들이 정리가 되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인지(認知) 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두어 발 떨어져서 보면 잘 보인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심리적 거리도 따라서 멀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심리적으로 멀어지면 물리적으로도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다시 보고 그들을 다시 보면 나의 문제가 보이고 그들의 문제 역시 보인다. 누구나 스스로를 잘 안다. 스스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回避)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의 뱃속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후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과 스스로의 마음 그리고 스스로의 행동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면서 나의 오늘이, 나의 하루가, 나의 삶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훈련이 되어 좀 더 객관적인 내가 된 것 같다.


나는 나를 안다. 그것도 아주 잘- 내가 나의 못난 모습까지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상처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시간은 나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고 꾸준한 연습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언제든 자신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 순간이 닥쳤을 때 상처 받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담컨대 아마도 나는,

앞으로 10년, 그리고 또 10년- 여전히 게으른 이상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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