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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시 Oct 20. 2021

Ready,,,,

준비를 위해 쓰이는 글

살이 빠진다. 벌써 4킬로가 빠졌다.

2달 전부터 시작된 위장병이 조금 나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며 나의 몸무게를 야금야금 줄이고 있다.

위장병으로 인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먹는 양을 줄이고, 소화가 쉬운 음식들로 식단을 정하고, 위장에 좋은 것들을 먹는다. 그리고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한다.


나는 지금 살려고 운동을 한다.




주기적으로 몸에 병이 찾아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은 오래간다는 걸 몸소 체감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이 나를 살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내려오고 7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나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몇 년 전까지도 내가 아픈 건 나이 탓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제주도에서의 내 생활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운동과는 멀어진 생활이었다. 이곳이 제주도인데 말이다. 제주도도 결국에는 그냥 삶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걸 막 먹는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병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수많은 올레길과 오름들과 관광지들이 널려있는 제주도에서 나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아 병이 났다. 이건 나이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하는 문제이다. 결국에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여기, 제주도에서 찍었다.


병이난 몸을 이끌고 이제야 움직인다. 그러니 병이 나를 살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오늘 운동을 하며 이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가 제주도인데 이곳에서의 내 생활은 너무 정적이다. 하는 일 조차도 정적인데 더구나 바이러스라는 복병 덕분에 생활마저 정적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이곳이 제주도라는 감각조차 잊고 지낸다. 7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이렇게 무뎌지게 만들어버렸다. 더없이 좋은 것도 매일 하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것도 매일 보면 감흥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곳이 제주도임을 상기시키면서 나의 상처와 힘듦을 상쇄시키는 것도 초반에는 가능했던 것 같다. 제주도의 로망은 내가 조금씩 제주도민이 되어가면서 사라져 버렸다. 아름다운 풍경의 뒤편이 보이고, 친절한 사람들의 속내가 보이고, 화창함과 함께 숨어있는 태풍과 바람이 보인다.


이건 나에게만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이 여행이라고 하지만 그건 죽기 직전에나 느껴지는 감정일 뿐 실제로 삶이 여행일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처음에 내가 제주도까지 내려왔을 때는 진짜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내려고 많이 움직였다. 집 근처에 바다가 있는 것이 근사했고, 출근하는 하늘이 예뻤고, 퇴근하는 노을이 그렇게나 좋았다. 그때의 나는 충분히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제주도의 이곳저곳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카페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제주도가 새롭지 않은 곳이 되어버리면 이 모든 것들도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게 주어지는 일상일 뿐. 제주도는 나에게 있어 고향집보다 더 을 게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제주도가 본래는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나는 제주도에서 충분히 즐겼으니 이곳은 나에게 더 이상 새로운 곳이 아니게 되어버렸다는 이 이야기는 참 슬픈 이야기이다.


어느 여행지이든 상관없이 여행자로서 바라보는 모습과 생활자로서 바라보는 모습은 다르다. 이곳 제주도도 예외일 수 없어 나는 이미 생활자로서 바라보는 모습에 익숙해져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다. 그저 여행을 위한 제주도라면 여전히도 참으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다만 나에게는 제주도가 그렇지 않게 되어버려서 그래서 참 슬픈 이야기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무를지는 나의 선택에 달린 일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분명 이곳을 떠날 거라는 거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이다.


이별 준비. 헤어질 준비. 멀어질 준비. 떠날 준비.

그 준비를 위해서 나는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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