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보니 이것 또한 욕심인 듯싶다.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류시화.
류시화 작가님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번역시집 덕분이었다. 그 이전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로 이미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그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류시화 작가님이 치유의 시를 주제로 하여 엮은 그의 번역시 모음집이었다. 이 책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
" 한 편의 좋은 시가 보태지면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좋은 시는 삶의 방식과 의미를 바꿔 놓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시는 인간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그 상처와 깨달음을. 그것이 시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다. 얼음을 만질 때 우리 손에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불이다. 상처받은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라. 그리고 그 얼음과 불을 동시에 만지라. 시는 추위를 녹이는 불, 길 잃은 자를 안내하는 밧줄, 배고픈 자를 위한 빵이다. "
번역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첫 번째 읽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에게 힘든 어려움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 . . (중략) . .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 . (중략) . .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중략) . . "
('나는 배웠다' 중에서)
그 책 속의 시들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고 위안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 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중에서)
짧은 문장 속에 담겨있는 속 깊은 의미를 해석해 내었을 때의 희열이 좋아서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시를 좋아해서 류시화 작가님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나는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의 류시화 작가님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그의 시집보다 에세이가 더 자주 출간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번역서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시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세이
시로 납치하다-번역시집 + 에세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세이
마음 챙김의 시-번역시집 + 에세이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시집
류시화 작가님 책을 다수 읽었다. 작가는 역시 필력으로서 평가받아야 한다. 나는 그의 글을 참 좋아한다.
"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벗어난다고 해서 낙오되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이라는 기준이 오류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걸으려면 편견의 반대편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든 사람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길이지 그 사람들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답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는 것이 호모 비아토르이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에세이'라는 장르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교훈적이며 삶에 대한 통찰 및 진리의 추구성이 강하다. 그런데 사실 삶에 대한 통찰이나 진리의 추구라는 것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들의 나열이다. 대부분의 '에세이' 장르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에세이'라는 장르를 선호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공감과 소통이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래서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류시화 작가님의 에세이들은 나에게 신선한 공감과 소통으로 다가온다.
"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에서)
무엇보다 나는 류시화 작가님의 번역서인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번역서는 당연히 류시화 작가님의 책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책도 그의 책 중에 하나라고 꼽는 이유는 번역자의 역할이 말 그대로 언어의 '번역'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류시화 작가님은 세계 곳곳에 묻혀있는 좋은 책들을 찾아 읽고 좋은 글들을 번역하여 책으로 출간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다. 그의 번역서 덕분에 몰랐을 수도 있는 좋은 글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좋은 책을 발굴해 내고 좋은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번역을 하고 책을 읽을 사람들이 좀 더 수월하게 글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의 시간들이 분명 있었을 거라는 걸 안다.
류시화 작가님은 인도를 참 좋아한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들에는 인도의 우화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글을 통해서 명상과 영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한 평가를 떠나서 글 하나는 정말 잘 쓰는 작가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명상과 영성에 관한 글들을 많이 쓰시지만 그의 초창기 시들을 찾아보면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작품들도 더러 있다.
"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 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
(류시화 시 '별에 못을 밖다')
"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버리기 때문에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빡이네
소금별이 더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
(류시화 시 '소금별')
"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류시화 시 '첫사랑')
류시화 작가님의 책을 읽다 보면 글들이 좋아서 밑줄을 긋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언젠가 한 번 내가 유독 그의 글에 밑줄을 많이 긋게 되는 이유를 생각했다. 그냥 그의 글처럼 살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류시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글처럼 살리라고 또 수백 번 다짐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 한 삶을 여전히도 살고 있겠지.
어제 아주 우연하게도 류시화 작가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니다. 만났다는 표현보다는 그저 볼 수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의 신작 시집에 그의 필체를 담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딱 한마디 하긴 했다. 당신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당신의 글을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