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육지로 온 제주도 토종 수국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꽃을 잃었고 나는 수국들이 내년까지 잘 버텨 주기만을 바란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수녀님이자 또 시와 에세이를 쓰시는 작가이신 이해인 님의 글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녀의 글은 참 예쁘고 맑고 깨끗하다.
"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 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 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 시 때문이었다. 이해인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고 그녀의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이.
제목부터 참 예뻤던 이 글은 청소년 시절 친구와 함께 쓰던 교환일기를 통해 친구가 좋은 시라며 나에게 적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글 자체에서 글을 쓴 사람의 순수하고 맑고 깨끗하고 희망적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처음 알게 되었던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큰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 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
('외 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친구가 알려 준 또 다른 그녀의 시는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화시켜주기에 충분했다. 한동안 이 시를 읊고 다녔다. 어떻게 하면 '외딴 마을의 빈집'을 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다녔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이해인 작가는 시와 함께 에세이도 쓰고,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도 쓰고 있다고 알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마음에 사랑과 희망이 많아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특징이 보인다.
글을 쓰기 위해서 그녀가 선택하는 글 속의 단어들을 보면 부정적은 요소들이 적다. 그녀의 글 속에는 '꽃' 이라던가 '바람', '나무', '파도', '숲', '새' 같은 자연을 주제로 하는 단어들이 많고, 또 '친구' 라던가 '초록', '고백', '편지', '기쁨' 같은 행복을 유발하는 단어들이 많다. 이러한 긍정적인 단어들로 쓰인 글의 문장은 대부분 밝고 희망적이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에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정말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
('황홀한 고백')
나는 이해인 작가의 에세이보다는 시를 더 좋아하고 잘 읽는 편이다. 그녀가 에세이를 못 써서 혹은 재미가 없어서라기보다는_에세이도 충분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_시를 훨씬 많이 접했고 또 나에게 더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그녀의 시이기 때문이다.
이해인 작가가 수녀이기 때문에 그러한 글을 쓴다는 것보다는 본래 맑고 깨끗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수녀가 된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정적이고 불편하고 깨끗하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와 나를 괴롭힐 때는 그녀의 글을 찾아서 다시 읽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기도 한다.
" 어느 날
아름다운 절에 놀러 갔습니다
차 마시는 방
커다란 유리창에
앞 산의 숲이 그대로 들어 있었지요
진짜 숲인 줄 알고
새들이 와서 머리를 부딪치고 간다는
스님의 말을 전해 들으면서
사람들은 하하 호호 웃었지만
나는 문득 슬프고
가슴이 찡했지요
위장된 진실과
거짓된 행복이
하도 그럴듯해
진짜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려갔다
머리를 박고
마음을 다치는 새가
바로 나인 것 같아서요
실체와 그림자를
자주 혼동하는 새가
나인 것 같아
나는 계속 웃을 수가 없었답니다 "
('유리창 위의 새')
어느 날은 이해인 작가의 이 시를 접하고 조금은 색달랐던 그녀의 글에 또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통찰력도 가지고 있으니 작가는 역시 작가다 싶다.
사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글의 장르 중에서 '시'라는 장르를 참 좋아하고, 그래서 종종 그런 종류의 글을 쓰기도 하지만 요즈음의 시, 그러니까 현대적이라고 하는 지금의 시들은 나에게는 참 어렵게 느껴진다. 글 자체는 참으로 유려해 보이지만 작가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듯한 주제가 어렵고 난해해서, 실력을 뽐내려는 듯 어려운 단어들로만 잔뜩 늘어놓아서, 그래서 한 줄의 문장 안에 숨겨진 뜻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겠는 그러한 시들을 많이 보았다. 이러한 시는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또 책을 읽는 이유는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소통도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는 글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독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해인 작가의 시는 참으로 좋은 시이고 좋은 글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글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글을 한 번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