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즐겨찾기_4. 임경선

감정의 극 사실주의

by 천사의 시

나에게 있어 작가 임경선은 완벽한 에세이스트이다. 나는 그녀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훨씬 더 선호한다.



내가 가진 감정이지만 나는 어떻게도 설명을 하지 못하겠는 나의 감정을 그녀는 너무나 적확하게 글로 옮겨 놓았다. 감정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건 그녀의 책을 한 권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거다. 처음엔 그게 너무 신기했다.


서른 중반쯤을 넘어서부턴가 예전만큼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 사이 인격적으로 훌륭해져서는 물론 아니고, 우선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시킬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건강을 해쳤다.

...... 중략......

또 다른 이유로 나이가 서른 중후반이 되자 얼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한계가 파악이 되어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없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이유는 다년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나만의 요령이 생겼다는 것이다.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내 나이 서른 중반이었고 그때의 나에게는 이 글은 너무나 현실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두통으로 머리 아프던 날들을 그녀의 글로 버텼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이 글로 위로받고


나이가 들수록 가만히 있어도 삶의 무게는 무거워지니 가급적 많은 것들을 단순화시키고 깃털처럼 가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방식에 여분의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자유롭다.

('태도에 관하여' 중에서)


이 글로 관계를 공부했다.


'관리'하지 않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제외하고는 부디 놔줄 수 있는, 그런 요령을 나는 그녀의 책을 통해서 깨우쳤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여전히도 인간관계로 힘이 들 때 종종 들춰보는 책이기도 하다.


책 '자유로울 것'은 상당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이다.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덧붙여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아주 약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는 여행 에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녀가 교토에서 머물면서 다녔던 소소한 장소들을 너무 실감 나게 써 놓아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교토가 너무 가고 싶었다. 특히 그녀가 알려준 교토의 카페들이 궁금했다. 언젠가는 가 보는 걸로-


그녀는 일본, 포르투갈, 미국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이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정한 구원' 역시 여행 에세이이고, 이번에는 포르투갈이다. 딸과 함께 어릴 때 살았던 리스본으로 여행을 간 엄마의 시선으로 과거의 기억들과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태도에 관하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가 작가 요조와 함께 쓴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좀 더 깊게 이야기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헤퍼서 조금 더 손해를 보고 상처 입는다 해도, 그래도 역시 '줄 수 있는' 사람,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은 더없이 근사한 거 아닐까.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에서)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글 잘 쓰는 두 작가의 티키타카가 유쾌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그녀들의 성격, 생각 등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책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만약 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나도 모르게 한번 멈칫하고 이 말을 해도 될까 말까 신중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이미 불편한 관계이자 어느 정도 공적인 인간관계라고 해야겠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에서)


제가 겨우 아는 것은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 그저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나의 누적된 선택들이 나를 더욱 나로서 만들어준다는 것뿐이에요.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에서)



감정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너무나 꿰뚫는 것 같아서 솔직히 이런 사람을 만날까 봐 무서운 기분도 든다. 말 몇 마디에 나를 꿰뚫어 볼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은 무섭다. 하지만 그런 통찰력을 이렇게 글로 만나면 나는 헤어 나오질 못한다.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역시 작가는 필력이다.


혹시나 책 제목으로 인해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혀둔다. 오해가 없으시길.


사람과 사람 간에 완전한 이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고 체념하는 자신의 마음을 수진은 마주했다. 종종 사사로운 것들로부터 생긴 감정의 오해가 계속 발전해 나갈 때가 있다. 사사로운 엇갈림과 불안,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고집이 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주어 치명적인 파국의 가능성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쌓아온 위화감이 선명해진다. 단순히 한 건만을 보면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지만, 그것은 하나의 계기가 되어 예전부터 납득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서로의 가슴속에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사소해서 서로 참고 마음속으로 억눌러오다가 어느 날 마침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남들에게 갈등의 이유를 설명하기 쉬운 것은 차라리 편하다. 누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폭력을 휘둘렀다거나. 하지만 사사로운 위화감을 남들은 이해해 주지 못한다. 그만큼 혼자 더 괴롭고 외롭다. 그렇게 계속 안쪽 서랍에 깊숙이 밀어 넣어두게 된다. 더 이상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 결국 터져 나올 때까지.
한편으로는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도 습관이고, 불행을 느끼는 것도 습관이겠지만.

('가만히 부르는 이름' 중에서)


그리고 '가만히 부르는 이름'은 내가 유일하게 읽은 임경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수진과 혁범과 한솔,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에세이에 비해서 인상적이진 않았다.


다만 이번에도 감정의 극 사실적 표현을 작가답게 설명을 하고 있다. 현실의 내가 아프게 경험한 바로 그 감정이 이렇게 설명되었다. 나는 그녀의 이런 문장들을 너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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