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도 어쩔 수 없지, 뭐-
파로가 낯설어서인지 분명 피곤함에도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한다. 억지로 잠을 청한다.
이른 아침 7시 전에 눈을 뜬다. 긴장한 체 아주 짧은 잠을 잔 것 같다.
오전 8시, 숙소 근처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매다 버스 터미널을 발견했다. 숙소에서 파로 시내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약 40분 정도 소요가 되는 거리였다. 파로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해 급하게 근처 파로 기차역으로 간다.
오늘 기어코 라고스에 가겠다고 오전 9시 2분에 출발하는 라고스행 기차에 겨우겨우 몸을 얹었다.
포르투갈 남부는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대부분 차량을 렌트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만 많아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과정을 또 거쳐야 하지만 그럼에도 라고스를 갈 수 있음에 안도한다.
1시간 45분 정도 소요가 되는 기차 안에서 잠과의 사투를 벌여보지만 결국에는 꾸벅꾸벅 졸고 만다. 늦게 잠들어서 일찍 깬 탓이 크다.
라고스 기차역에서 내려 올드타운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했다. 나는 올드타운을 지나쳐 라고스의 해변으로 간다. Praia da Batata 해변을 시작으로 Ponta da Piedade까지 해안절벽을 배경으로 둔 여러 해변들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오래전부터 사진으로 봐오던 그 장면을 내 눈으로 제대로 보고 싶어서 라고스의 해안절벽 해변과 해안절벽을 볼 수 있도록 마련된 관람로를 따라 끝까지 걸었다. 내가 라고스에 온 이유는 그것을 보기 위해서였으니까.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 절경, 풍경을 보면서 걸으면 되었다. 맑은 하늘, 내리쬐는 햇살, 그럼에도 시원한 바람까지 더해져서 걷기에 너무나 적당한 오늘 날씨였다.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파로에 도착하고 낯설었던 마음이 그사이에 또 바뀌어 있었다.
포르투갈 남부, 라고스부터 파로까지는 유럽 사람들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존재가 그들 사이에 묻혀있으니 어색함이 많이 줄었다.
라고스의 해안 관람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투어가 가능한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해안 절벽과 해안선을 감상하는 방법과 잘 마련된 해안 관람로를 따라 걷는 방법이다. 나는 해안 관람로를 따라 걷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내가 가진 가이드북에도 포르투갈 남부는 실려있지 않았고, 그래서 포르투갈 남부에서의 나의 여행은 그저 검색과 감각에 의지하고 있다. 자연 풍경을 보는 건 설명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보고 내가 느끼는대로 감상하면 되는 거니까.
해안 관람로의 끝에 다다라서 또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이제 라고스의 올드타운으로 간다. 지도상으로 거리가 꽤 멀겠다 싶었는데 Ponta da Piedade에서 올드타운까지 35분 정도 걸었다. 체감상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올드타운의 골목골목을 걷는다. 해안길을 걷고 온 다른 여행자들은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들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검색을 활용하여 찾은 식당으로 간다.
'Restaurante Eattico'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샌드위치와 타파스 종류를 판매하는 작은 식당이었다. 나는 새우샌드위치(버거)와 샹그리아 한 잔을 주문한다. 목이 마르던 참에 시원하고 상큼한 샹그리아가 갈증해소에 퍽이나 도움이 되었다. 샌드위치는 건강을 상당히 생각한 느낌이었고 맛있었다. 조금은 색다른 감자튀김 역시 괜찮았다. 유명한 식당인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이 많은 걸 봐서는 괜찮은 식당임에는 확실했다.
점심을 먹고 파로로 돌아가기 위해 라고스 기차역으로 간다. 좀 일찍 파로로 돌아가서 파로 시가지도 돌아볼 생각이었다. 오후 3시 9분 기차를 타지 못하면 이후 2시간 넘게 기차를 기다려야 한다.
라고스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혹은 점심부터 해 질 녘까지 정도면 시가지를 돌아보는 데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예쁜 해안에서 해수욕을 즐기길 원한다면 숙박을 하루 이상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조금 일찍 파로로 돌아왔으니 파로 시가지를 돌아본다. 좀 아쉬움이 남는 건 포르모사 공원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카르무 성당, 산타마리아 성당, Arco da Vila, Faro Marina 등등 시가지를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볼뿐이었다.
바다 전경을 둔 기찻길이 예뻤고, 예쁜 보라색 꽃이 피어있는 나무들이 예뻤고, 그리 크지 않은 광장의 모습들이 예뻤다. 오래전 이탈리아 바리를 여행할 때 생각이 끼어들었다. 첫날은 엄청 낯설어서 너무 어색했다가 하루가 지나니 너무 좋아져 버린, 그래서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오늘 하루 27,252걸음 16.9km를 걸었다. 이제 이 정도는 거뜬하네.
라고스의 절경을 보면서 내내 인간이 대단한가 자연이 위대한가 경쟁을 붙여보았다. 내가 답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답은 찾지는 못하였다. 확실한 건 2024년의 삶의 풍요로움을 완성시킨 건 인간이니까 인간의 기술과 능력도 대단하지 않다 말할 수 없고, 오늘 라고스의 절경을 만들어낸 것은 자연이니까 자연이 위대하지 않다 할 수도 없다는 거다.
오래도록 라고스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다음이 또 있을지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