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사의 시 May 17. 2024

포르투갈을 떠날 시간

포르투갈 남부는 현재 본격 손님 맞이 준비 중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아침, 얇은 비가 내린다. 숙소 주변을 돌아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비로 인해 조금은 늦춰진다. 분명한 건 지금 내리는 이 비는 오래지 않아 그칠 거라는 거다.


나는 조용하게 그 순간을 기다린다.


 



라고스, 파로, 알부페이라까지 돌아보았다. 오늘은 콰르테이라(숙소 동네)를 돌아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긴 정말 해변 밖에는 없다. 다른 볼거리라고는 없다.



콰르테이라에서 빌라모우라로 이어진 해변을 걷는다. 이제 막 해수욕장 개장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빌라모우라 쪽은 대부분이 호텔들이다. 지금도 이미 여행을 온 유럽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성수기가 되면 호텔들은 더 많은 관광객들로 분주할 것이고, 해변의 썬배드도 관광객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바다와 해변의 모습을 보며 걸으며 상상을 한다. 관광객들로 꽉 들어찰 해변의 모습을.


어디 유명 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나의 사진 실력으로는 절대로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그저 그런 풍경을 내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먹구름이 물러가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을 두 시간 정도 걸었다.


해변을 벗어나 콰르테이라 도심지로 들어가 본다. 아파트들을 지나치고 식당가도 지나쳐 오랜 건물들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역시나 볼거리라고는 없다.


가보려고 마음먹었던 식당을 찾아간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시간상 점심시간이었으니까.


'Piri Piri'라는 이름의 식당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식당이 포르투갈 남부에 생각보다 많았다. 외관부터 내부까지 상당히 로컬적인 느낌이 많이 나지만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평점을 받고 있는 곳이기에 이곳을 떠나기 전 한번 들러본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점원들이 엄청나게 친절하다. 나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것까지는 익숙한데 메뉴판을 주지 않는다. 나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알아들은 거라고는 생선과 고기 중 뭘 선택할 건가였다. 이 식당은 생선이 맛있다고 했으니 나는 생선을 선택한다. 이후 또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데, 분명 영어인 건 알겠는데 알아듣지 못한 나는 사진을 보여주며 음식을 주문한다. 물론 나의 선택보다는 점원의 추천에 따라서.


식전빵이 나오고, 샐러드와 직접 만든 수프가 나온다. 올리브유, 식초, 소금 등은 따로 준다. 샐러드에 올리브유와 식초를 직접 넣는다. 그리고 나는 맥주 1병을 추가로 주문한다. 메뉴판도 없이 주문한 메뉴가 얼마나 어떻게 나올지 걱정했지만 맛있게 구워진 생선이 등장하면서 걱정은 사라졌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점원들이 괜찮냐고 몇 번씩 물어본다. 사실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다.


문제는 이 식당이 카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 주문 전에 확인을 해 봤어야 하는데 정신없이 휘몰아친 주문에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점심을 먹으며 카드 결제가 되냐고 물어보니 오직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나의 수중에 현금이라고는 5유로 밖에 없었다. 숙소에서 현금을 더 챙겨 왔어야 하는데 싶은 후회를 하며 현금은 없고 카드뿐이라고 말했더니 점원들은 너무나 흔쾌히 괜찮다고 한다.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식당 점원들은 '괜찮다.', '저녁 영업 때 가져다 달라.' 등의 이야기를 한다.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 일단 점심은 맛있게 먹는다. 식당이 오후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가서 문을 닫기 때문에 내가 돈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시간은 저녁 영업 오픈 때뿐이다. 일단 음식을 다 먹고 돈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자 디저트는 먹고 가라고 나를 붙잡는다. 처음엔 디저트를 사양했지만 굳이 디저트를 권한다. 디저트 비용은 받지도 않는다면서.


디저트로 푸딩을 주문하고, 순식간에 푸딩까지 먹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브레이크 타임 전에 숙소에 가서 현금을 가지고 오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현금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식당을 나와 부리나케 숙소까지 뛰어가 현금을 챙겨 식당으로 다시 간다. 이 돈을 당장 갚지 않으면 저녁까지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을 거니까. 오후 3시 직전, 다행히 식당문은 아직 열려있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식사값을 지불한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버스 안 카드 단말기가 고장이 나자 버스를 타는 승객들의 버스요금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버스기사 아저씨

현금이 없어 음식값을 계산하지 못한다고 해도 흔쾌히 괜찮다고 하는 식당 점원들

횡단보도 앞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우선시해 무조건 차를 세워주는 운전자들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는 참 많았다. 이런 여유와 배려가 넘치는 모습들을 고스란히 내 눈에 담는다. 언젠가는 나도 써먹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 내일 아침 일찍 오스트리아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짐을 다시 정리한다. 길 것 같던 시간도 기어이 간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노을을 보러가야겠다.

이전 03화 진정 휴양지, 알부페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