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사의 시 Sep 22. 2024

혼자서 노는 걸 즐겨봐

드라마와 책으로 인생을 배워

자주 들르는 단골 카페가 매주 월요일마다 휴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내킬 때마다 들르는 카페인데 이제 매주 월요일은 올 수 없으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 사실을 잘 기억했다가 월요일마다 방문을 하지 말아야 할 텐데 나에게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장마철이 사라지고 땡볕 더위가 추석날까지도 기승을 부린다. 계절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 찰나 이틀 연속 많은 비가 내리고서는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오늘이다. 이제 제법 가을에 접어들었다.




서울 사는 고향 친구의 심심한데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다는 주말 소식을 응대하다가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신발을 챙겨 신고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라고 이야기했다. 가을바람도 느끼고 북적이는 사람들의 체온도 느끼라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며칠째 집을 나서지 않고 있는 건 나였다. 그 꼴은 말로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처참했다. 인간의 삶이 나태와 게으름으로 얼룩이 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 문 밖으로 한 발 내어 디뎠다. 무엇을 하든 혼자 하면서 혼자서 논다. 그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노는 것에 징그럽게도 익숙해져서 있는 없는 듯 잘 지내는 요즘이다.


어쩌면 내 존재의 생명력을 최대한 감추고 싶은 시기가 지금이라고 하고 싶다. 살아 있지만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나의 초라한 꼬락서니를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숨기고 감추고 움츠렸다. 그저 외형의 초라함 뿐만 아니라 내면의 천박함이 드러날까 무서웠다.


상대에게 진실하지 못하였고, 위로가 필요한 이를 동정을 하였고, 가까운 이의 괴로움을 회피하였고, 또-


나는 변했다. 많이 변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변하였다. 아니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 나의 선택이었으니 나의 의지가 아니라고 하지도 못하겠구나. 그렇게 변하였는데 지금의 나는 이런 나의 변화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라는 인간의 천박함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결국에는 차라리 혼자서 노는 것이 편해지는 것이다.





혼자서 잘 놀자고 하면 무엇에든 빠져야만 한다. 소위 '덕질'을 잘해야 한다.


내가 혼자서 잘 놀 수 있는 이유는 나의 드라마 '덕질' 덕분이다. 보려고 했던 드라마를 보고,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고, 다른 나라의 드라마를 보고,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본다. 스릴러 장르를 보고, 추리 장르를 보고, 로맨스 장르를 보고, 사극 장르를 보고, 현대물을 본다.


요즘은 중국드라마의 늪에서 허우적 대는 중이다. 타고난 모사꾼 범한의 생존기를 다룬 '경여년'과 도산경/서염창현/상류(=방풍패)/적수풍륭 등 등장하는 남자들의 사랑을 혼자 다 받는 공주 소요의 이야기를 다룬 '장상사', 강리이자 설리인 한 여자의 한 맺힌 처절한 복수를 다룬 '묵우운간'까지.


내가 드라마를 덕질하는 이유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 딱 한 가지다. 나의 이야기가 심심하고 무료하고 재미가 없어서 남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꾸며진 이야기라고 해도 남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가 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책을 '덕질'한다. 속에 등장하는 남의 이야기 역시 언제나 재미가 있다.


그런 의미로 지금 보고 있는 책은 이기주 작가의 '보편의 단어'이다.

                     

작가의 이전글 노처녀의 히스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