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정해진 책을 데려오는 일

오늘, 끊임없이 행복할 것 <책크인>

by 두망

바야흐로 플랫폼의 시대다. 블로그, 인스타,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까지 각각의 특징을 가진 플랫폼들을 닮은 듯 다르게 저마다의 개성과 장점을 들이밀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다. 2015년도부터 시작된 내 블로그는 꾸준히 몇 년 동안 글을 썼더니 자주 글을 쓰지 못하는 요즘도 나의 몇 년 전 글들을 보고 하루에도 수백명씩 내 블로그를 방문하곤 한다. 그러나 한번 포스팅하려면 최소 1시간씩 고민하며 글을 쓰는 게 부담되어 미루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귀차니즘을 이겨내고자 내가 선택한 것은 오직 사진 한 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다.


이미 유명한 플랫폼이지만 늦깎이 인스타그래머가 된 나는 요즘 들어 인스타를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 곳에서는 사진 한 장으로 가볍게 소통할 수 있으며 계정을 한 번에 여러개 운영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주제를 세분화시킨 계정들이 많이 보이는 편인데, 그중 나는 책과 여행 계정들을 많이 팔로워하고 지켜보는 편이다. 어느 날 나와 소통하는 인친(인스타친구) 중 한 명이 여행책을 집필했다는 글을 올렸다. 평소 그의 사진과 글을 관심 있게 지켜봤기에 책 또한 믿고 구입하려 했지만 온라인으로만 판매를 한다는 소식에 잠시 보류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직접 만져보고 오프라인으로 구입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다시 밀려드는 새로운 정보의 늪에 빠져 기억을 상실할 때 쯔음 오프라인 독립서점에 책이 입점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입고된 독립서점 중 하나는 우리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그래, 이거야 말로 이 책을 구입하게 될 운명이 아닐까.


마침 이 날 퇴근길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괜스레 어딘가에 방문하고 싶다. 찝찝한 공기를 머금고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의 문을 여는 게 못내 외로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온라인 상으로 모든 게 연결이 되는 세상이라 하지만 직접 만나 서로에게 집중하는 경험과는 비할 수가 없다. 허나, 평일 퇴근 시간. 그것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주변에 누구 하나 불러내기 어렵다. 그럴 때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게 좋다. 나 같은 경우는 그게 책방이다. 책방은 굳이 불러내거나 예약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열린 채로 머무는 편이니, 내가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다가가기 위해 노력만 하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만남이라니. 이보다 즐거운 만남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단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책크인>

집에 가기 싫은 날은 역시, 책방. <책크인>


손에 들린 우산을 탈탈 털고, 들어간 책방에는 책들이 가득하다. 사각으로 각진 물체들이 가로로 세로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들을 보면 내가 오늘 걸어야 할 길들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구경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선을 미리 한번 짜본다. 물론 그 찰나의 시간에 결정된 동선은 언제든지 바뀌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좋다. 어차피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 짠 계획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쳐 온 길에 본 책이 눈에 밟혀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저 앞에 보이는 책 표지가 눈에 띄어 걸음을 빨리 하기도 한다. 걷는 길의 속도는 다르더라도, 어쨌든 나는 그날의 책방을 경험했고 즐겼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굳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책방에 들어가면 보통 가운데에는 낮은 테이블들 위에 책들이 가로로 전시되어 있고, 외곽에는 책꽂이에 세로로 꽂혀서 전시되어 있다. 아무래도 더 많은 책들을 보유하기 위함일 텐데, 가로와 세로는 보이는 면적부터 다르니 시선이 가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가로로 전시되어 있으면 표지가 완전히 노출되기 때문에 색깔과 표지를 보고 눈에 가는 책을 집어 들게 되는 것과는 다르게, 세로로 꽂혀 있는 책은 아무래도 책 제목부터 읽어보게 되기 마련이다. 가로로 전시되어 있는 책은 표지의 사진과 색깔을 보고 먼저 끌리는 편이고, 세로로 전시되어 있는 책은 제목과 내용을 먼저 읽어보게 만든다. 하지만 가벼운 내 지갑 상황으로는 겉표지와 속내용이 모두 만족되어야만 데리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결국 공평한 전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명확하게 구입할 책을 정하고 방문했을 경우에는 그대로 책방지기에게 다가가서 책 제목을 얘기하면 한걸음 옮기지 않아도 내 손에 원하는 책이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아직 구입할 책을 정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오늘 사고자 했던 책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미 정해진 목적지를 애써 보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책을 구입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내 발걸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가로로 전시되어 있는 책과 세로로 전시되어 있는 책은 느낌이 다르다.




오늘을,오늘의 나에게_조성경 (₩18,800)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끼리는 금방 친해지게 되어있다. 인스타로 여행 계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주변에 여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더군다나 나도 곧 여행 에세이를 제작할 계획이어서 그런지, 인스타로 여행책을 집필하신 작가님들을 보게 되면 괜히 쪼르르 달려가 친한 척을 하게 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를 이룬 사람을 보면 호기심이 생기고,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새삼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SNS 플랫폼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렇게 작가님을 알 기회나 있었을까 싶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말이 생각이 난다. “곧 온라인 인맥이 오프라인 인맥보다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갔는데,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표현되는 스스로를 잘 관리해야 하는 시대이다. 세상은 더 살기 편해졌다지만, 아무래도 개인은 빨라진 세상을 쫓아가기 위해 더 피곤해진 것이 사실이다.


인스타로 대화를 나누던 작가님의 책을 직접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데, 마지막에 설렜던 이유는 아무래도 내 꿈 또한 책을 내는 작가로서 작가님 책 위에 내 꿈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형태도 없는 막연한 꿈이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힘입어 실체를 갖게 된다. 책 한 권 사러 왔다가 꿈을 만나고 간다. 이것만큼 가성비 좋은 소비가 있겠나 싶다.



여행책을 읽다 보면, 나도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저렇게 떠나도 될까라는 모순된 감정이 피어오르곤 한다. 물론 그런 감정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다 잊고 작가가 하는 여행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작가의 책은 처음에 읽을 때는 다소 정신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나라별로 모여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터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이는 작가의 수많은 이야기를 한 책에 담으려면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 배치하는 것이 몰입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뒤 목차를 다시 살펴보자 그제서야 작가가 이야기의 순서를 배치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가 보였다.


남들은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쓰는 삶이 부럽다고 말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불안하고 위태로웠다는 작가는 그래서 책의 제목을 <오늘을, 오늘의 나에게>라고 지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하루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큰 공감을 일으킨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지만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 가장 행복해야 한다. 비가 와서 이동하기 힘들고 일이 힘들어서 빨리 쉬고 싶었지만 굳이 책방에 방문한 것도. 이미 살 책이 정해져 있었지만 굳이 1시간 가까이 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구경한 까닭은 결국 지금 내가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책방에 가면서, 책방에 들어가서 책을 보면서, 책방을 나오면서 쥐고 있는 책의 무게를 느끼면서, 끊임없이 행복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하루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오늘을, 오늘의 나에게
매거진의 이전글EP.02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