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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Jan 13. 2022

프롤로그 - "엄마 나 휴학할래"

경남 창원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0 "엄마 나 휴학할래"




"엄마 나 휴학할래!"


드디어 말하고야 말았다. 이번 학기를 보내면서 겪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로감 그리고 내년에 졸업한다는 부담감이 겹쳐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건축학과는 5년제라 다른 학과보다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얼른 졸업해서 당당한 사회인으로 출가(?)하기를 바라는 엄마를 설득하려면 구체적인 계획과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었으므로 나름대로 만발의 준비를 하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 가족끼리 산책을 나왔다가 아빠와 동생은 앞서 걸어 가버리고 엄마와 둘이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준비했던 '그 말'을 던진 다음 엄마의 공격(?)에 대비한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와중이었다.


"그래 그렇게 해."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놀라서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 이번 연도에 하는 거 보니까 맨날 밤새우고 사람 사는 게 아니더라. 좀 쉬면서 엄마하고 이렇게 놀기도 하고 살도 좀 빼고 하자. 너도 이제 좀 쉴 때가 됐어."


엄마는 좀비처럼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와서 돌아다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휴식이 필요하다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나 보다. 그렇게 휴학은 엄마의 허락을 등에 업은 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내가 누구보다 빠르게 졸업하고 학교를 떠날 거라 생각했던 동기들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휴학을 했지만,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던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찾아온 여유를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에 조급증이 생겼나 보다. 소화가 안 되고 잠을 못 자서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나는 맘 편히 쉬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며 동기들보다 더 자주 학교로 나가서 작업을 했다. 6개월 동안 4개의 워크숍 참여, 2개의 공모전 제출, 그 외 몇 가지 일을 추가로 더 해냈으니 휴학을 하고 얼마나 더 바쁘게 살았는지 짐작이 가려나 모르겠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훨씬 편했고 내 일상은 이게 맞구나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휴학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물어봤던 것은 바로 "여행은 어디로 갈 거야?"라는 질문이었다. 처음 한 두 번은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어디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대답하였지만 계속해서 여행을 어디로 갈 건지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여행 안 가! 안 간다고!!"라는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나에게 여행은 마치 대단한 것이며, 시간이 있을 때 꼭 가야 하는 필수조건처럼 이야기하는 그들의 논리에 반박하고 싶어서 더욱 심술을 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여행이 도대체 뭐 그리 대단하길래 저렇게까지 가보라고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나를 떠나게 했던 그 날의 하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여느 날처럼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예쁘게 흐르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나는 뭐가 그렇게 바빴기에 이렇게 예쁜 하늘을 여태까지 올려다보지 못했을까... 갑자기 친구들이, 선배들이, SNS에서 그토록 추천하고 내가 거부했던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 그 순간 잠시 하늘에, 분위기에 취했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순간을 담은 하늘 사진과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글을 SNS에 올린 뒤였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 것과 실제로 떠나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처음 4주를 목표로 전국을 돌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있었지만 떠나본 적도, 떠나려고 시도를 해본 적도 없었기에 스케줄이나 여행 비용, 심지어 준비물도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몰랐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게 짐을 분산시키는 힙색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등산 가방 하나 메고 출발했다가 여행 중에 급하게 구입했다고 한다면 조금 이해가 되겠는가? 어차피 완벽하게 준비해서 떠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얼마 안 되는 시간과 앞서 여행을 떠났던 수많은 선배 여행자들의 방대한 정보들 밖에 없었고 나는 그것을 내 스타일대로 수정해서 계획을 세워야 했다.


땅끝마을부터 통일전망대까지 찍고 오겠다는 패기 넘치는 계획은 일주일이라도 버티면 다행이라는 소리와 함께 부모님의 내기 거리가 되었다. 여행 일정 짜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던 나는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지도를 하나 펴놓고 수십 번씩 계획을 수정하며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검색할수록 새로운 정보들이 나왔고 아직 떠나지도 않았지만 가능한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내 욕심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숨기지 못했다.



매일 밤 수정을 거듭하던 여행계획



욕심이 많지만 그만큼 겁도 많은 나는, 고작 국내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끊임없이 지금 떠나는 게 맞는지에 대해 자문했다. 어떤 날에는 그냥 떠나버리자 싶다가도, 어떤 날에는 지금 내가 맘 편하게 여행할 때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말 떠나겠노라고 마음을 다 잡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읽게 된 짧은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은 유명한 여행지에 대한 소개도, 감성을 자극하는 좋은 글도 아니었다. 그저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상식이었다.


"사람의 무릎 연골은 지우개와 같아 결국에는 닳아서 모두 사라지고 만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글을 읽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두 다리가 멀쩡한 축복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무릎 연골이 전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순간에도 다리의 움직임에 의해 계속 사라지는 연골을 생각하며 조금 조급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떠나게 된 나는 거주하고 있던 창원에서 출발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37일 동안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초보 여행자라 실수도 잦았고 계획도 틀어지면서 좌절도 많이 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감정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여행은 지나고 보니 결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러므로 본인이 행복한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여행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던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이 감정들을 기록해 누군가가 떠날 용기를 내거나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모두가 오롯이 본인을 위한 여행을 준비하고 떠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작가 본계정 인스타 (@smg_dm)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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