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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Jan 16. 2022

01. 떠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경남 진해·김해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챕터1

#1 떠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아이고... 죽겠다. 나는 지금 높은 언덕을 자전거를 끌고 오르고 있는 중이다. 창원에서 진해로 넘어가는 길에 이렇게 높은 언덕이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떠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이런 변수가 마구 터질거라는 것을... 여행의 첫 목적지는 국내 건축 여행이라는 타이틀답게 창원 바로 옆 동네에 있는 <진해 기적의 도서관>으로 결정했다. 지도에서 확인해봤을 때 우리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35분이면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기에 자전거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의 시작을 자전거로 시작한다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는 시작되었다.


1. 아파트 앞에 있는 자전거 보관함에 자전거가 하나도 없었다.

  → 조금 더 걸어가서 다음 정류장에서 자전거를 대여했다.

2.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

  →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보이는 정류장에서 교체했다.

3. 목적지까지 중간쯤 왔을까? 떨어트린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다.

  → 굉장히 좌절했지만, 다행히 한번 껐다가 켜니 다시 작동하였다.

4. 35분은 무슨... 지도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계산하지 않는다.

  →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 1시간을 넘겨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5.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데 눈앞에 아주 긴 터널이 나타났다.

  → 순간 멍해졌다. 다행히 펜스가 쳐져 있었지만, 화물차가 바로 옆에서 쌩쌩 달리는데 오금이 저렸다.



(좌) 갑자기 펑크가 난 자전거 / (우) 아주 길고 무서웠던 터널



이 모든 사건들이 집을 떠난 지 1시간도 안 돼서 벌어진 일들이다. 나는 분명히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출발했는데, 이렇게까지 여행에 많은 변수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변수가 생길 때마다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해결책을 생각하여 이겨냈으니 스스로 조금 뿌듯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하며 이보다 훨씬 많은 변수와 심각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해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하고 첫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은 몹시 가벼웠다. 생전 처음 걸어보는 길은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즐거웠고, 푸른 하늘과 걷기 딱 좋은 햇빛과 부드럽게 부는 바람,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고 있는데 나 홀로 낯선 곳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들뜨게 했다.



내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



첫 목적지인 <진해 기적의 도서관>에서 나는 ‘아이들을 배려한 공간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원초적인 감탄사를 내뱉았다. 사진으로, 책으로 수없이 보았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직접 공간에 방문하여 건축가가 의도한 동선대로 걷는 경험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들을 배려해 낮게 만든 계단을 조금 불편하게 오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계되어 조금 낮은 창문을 쭈그려 앉아 바라보며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란 당연히 어른들에게는 조금 불편해야 하며, 어른들은 얼마든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면서 어른의 기준에 맞추어 모든 것을 계획하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졌다.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진해 기적의 도서관>



첫 목적지에서 이미 진한 감동을 받은 나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나만의 리듬과 속도로 움직이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가 다시 한 번 다짐한 내용을 노트에 바로 기록해두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사람들이 몰리는 유명한 명소에 방문하는 것이 아닌 내가 정말 가고 싶고 느끼고 싶은 곳을 방문한다. 두번째, 택시보다는 버스를, 버스보다는 걷는 것을 선택한다. 즉,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 과정들을 겪으며 생각하고 느낀 것을 반드시 기록해둔다.


여행 첫날, 첫 목적지에 감동하여 다소 충동적으로 다짐한 이 기준은 여행 중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나만의 정답을 찾게끔 도와주는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어쩌면 아주 비효율적이고 대중적이지 않은 기준이었지만 덕분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쌓을 수 있었던 경험들은 앞으로 천천히 공개하도록 하겠다.



끊임없이 기록했던 나의 여행노트



그렇게 계획한 모든 공간에서 마음껏 보고 듣고 느꼈지만, 아침부터 너무 서두른 탓일까. 오늘 하루 정해 놓은 목적지 세 군데를 모두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다음 날 김해에서 만나기로 했던 후배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나와준 후배에게 정말 고마웠다. 저녁을 함께 먹고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저녁을 먹고 배를 채우고 나서야 내 체력이 이미 방전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워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키고 고작 10시간도 되지 않은 영웅담을 떠들다가 후배가 알고 있다는 찜질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뭔가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상하게 뭔가 찜찜한 촉이 올 때가 있지 않은가? 묘하게 후배랑 헤어지기 전 불안한 기분이 들어 추천해준 찜질방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금요일과 토요일만 24시간 운영을 하고 평일에는 12시 전에 문을 닫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찜질방은 모두 24시 운영을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아무 정보도 없이 여행을 시작했다니... 참으로 무식하니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위치한 거리에서 갈 수 있는 찜질방은 그곳이 전부였고, 결국 내 여행의 첫 숙소는 동네 모텔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하루를 정리하다 보니 집을 떠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었는지 손가락으로 세어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앞으로 있을 변수에 대한 긴장감과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과제에 열을 올렸던 지난 3년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하루였다. 만약,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작가 본계정 인스타 (@smg_dm)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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