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투둑... 투둑...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다. 설마... 어제 분명히 날이 맑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잠들었는데? 황급히 커튼을 젖히고 바라본 창문에는 내 마음과 같이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여행 3일 차에 벌써 비를 마주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오늘 오전 스케줄은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자연을 만끽하면서 철새들의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다. 아침부터 빗소리 때문에 심란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게스트하우스 4인실에 혼자 누워 멍 때리고 있다가 어제 체크인할 때 조식을 제공한다는 말이 생각나 터덜터덜 방문을 나섰다. 손님이 나 밖에 없었던 관계로 주방에서 뭘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인기척을 들으셨는지 사장님이 나오셨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아침 인사를 전하시고는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려고 했던 나에게 따뜻한 밥과 김치, 햄 반찬까지 꺼내 주셨다. 차가운 빗속을 걷기 전, 위장과 함께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나는 정말 바보였던가? 여행 출발 전 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 우산을 따로 챙기지 않고 아빠가 등산할 때 입는 우비를 빌려 챙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지 못했던 너무나 중요하고 당연한 사실은 아빠가 자가용으로 이동해 산을 오르는 것과 달리, 나는 계속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호기롭게 우산 없이 우비를 입고 가방에 방수 커버를 씌우고 빗속을 걸어 들어갔지만 5분도 안 돼서 온 몸이 홀딱 다 젖고 말았다. 30분여를 걸어 목적지인 을숙도에는 도착했지만,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자전거를 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때때로 마주치는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우산도 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걸어가는 나를 보고 흠칫 놀라곤 했다.
정말 다행히도 오늘 부산에서 접선하기로 한 친구 동형이는 차가 있어서 오후부터는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욕심부리지 말고 숙소에서 쉬다가 천천히 나올걸...” 혼잣말로 구시렁대 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을숙도에서의 일정은 빨리 끝내고, 오후 일정이었던 <부산 비엔날레>를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매번 비엔날레를 관람할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비엔날레의 작품들은 굉장히 양이 많고 내용도 난해하다. 전 세계에서 온 유명한 예술가들이 표현한 작품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몇 번의 비엔날레를 경험하며 작품을 즐기는 요령이 생겼다. 방대한 작품들을 눈으로만 먼저 구경하다 보면 마음에 와닿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면 그 작품 앞에 서서 여러 각도로 작품을 본다. 제목과 작가를 확인하고 작품 설명을 읽어본다. 공감을 하면서 스스로 질문도 던져본다. 그렇게 나는 비엔날레를 즐기며 수백 개의 작품들 중 마음에 드는 3-4명의 작가와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약 1년 만에 만난 동형이는 대한 건축학회 학생기자 활동을 하며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동형이는 부산에, 나는 창원에 살지만 매번 기자 활동을 하며 일로써만 서울에서 만났지, 부산에서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형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니 출발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프로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 하면서 웃어댔다. 오랜만에 본 동형이의 모습은 변함없어 보여 나도 같이 씨익 웃었다.
저녁 식사시간까지 시간을 때울 겸 들어간 카페에서 동형이는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여행의 목표와 행선지를 물어보았고, 나는 떠나기 전 스스로 수없이 묻고 또 대답했었던 나의 여행 목표를 이야기해주었다.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동형이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는 내가 부럽고도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사실 여행을 시작했음에도 나는 끊임없이 불안했다. “어쩌면 나는 여행으로 도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이 여행에서 뭘 얻어 갈 수 있을까?”같은 고민들이 매 순간 머릿속에서 툭 툭 터지던 나는 동형이와 나눈 대화 덕분에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이 적어도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형이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늘 자존감이 올라갔다. 동형이는 매사에 고민부터 하던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늘 강하게 어필해줬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날 동형이와 나눈 대화 덕분이었다.
잠시 밖에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온 동형이는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혹시 저녁 먹을 때 여자친구가 합류해도 괜찮겠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당연히 안 될 이유는 없었다. 내가 혹시라도 여자친구분을 어색하게 만들까 봐 문제였지만. 소심함을 대표하는 A형답게 혹시 여자친구분이 싫어하시는 행동을 물어봤다. 친구의 연인에게 안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는 싫었다. 가뜩이나 지금 행색이 거지꼴인데... 소심한 A형은 늘 이렇게 고민하고 걱정한다.
다행히 여자친구분은 굉장히 선한 인상의 소유자이셨고, 덕분에 대화를 굉장히 편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동형이 옆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연애에 대해서 별 감흥이 없는 편이지만, 행복한 커플들의 모습을 보면 연애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자가 무슨 돈이 있냐며 동형이가 쏘는 족발과 함께 잔에 소주를 채운다. 동형이는 운전을 해야 해서 아쉽게도 잔만 채웠지만 여행 중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하는 술은 굉장히 달았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숙소까지 태워준다는 동형이 차 뒷자리에 앉아 꽁냥거리며 대화하고 있는 커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나 속이 쓰려서 혼자 소주 한 잔 할라니까 여기서 내려주라.” 차 안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함께 여행 3일 차의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