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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Mar 15. 2023

10. 선택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다

대구 광역시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챕터10

#10 선택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폭풍우가 쳤었는데...



모두가 잠든 밤,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태풍은 창문을 시끄럽게 두들겨 댔지만, 전혀 듣지 못하고 깊은 숙면을 취했다. 자취방이 너무 편해서인지, 창밖에서 우르르 쾅쾅거리며 시끄럽게 울리는 비바람 소리 때문인지 좀처럼 하루를 시작하기가 싫어서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다가 배가 고파서 얼굴만 쏙 내밀고 정현이에게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봤다. 정현이도 학기 중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깨고 싶지 않은지 고개는 끄덕이지만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로 합의했다.


식사를 끝내고 난 뒤에도 좀처럼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비를 바라보며 하루 일정을 고민했다. 어느덧 여행 10일 차가 되었다. 일주일도 못 버틸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두 자릿수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 긴 시간 동안 여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오늘 같은 날은 조금 쉬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어차피 계획과 결정은 내가 내리는 건데 하루쯤 쉬면 어때. 꼭 하루를 꽉 채워야 할 필요가 있나. 하루쯤 그냥 흘러가는 것도 괜찮겠지…’ 하루 일정을 생각하다가 인생의 깨달음까지 얻게 된다.


1시간가량 고민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이불속에 들어가 가장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은 지 10분 뒤… 갑자기 빗소리가 멎더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맑아지는 하늘에 잠시 할 말을 잃고있다가 “아… 네, 알겠습니다. 움직일게요. 움직인다고요!”라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혼잣말을 구시렁대며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



그래도 비가 그치니 좋다 :)



구시렁대긴 했지만 날씨가 맑아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그냥 흘려보낼 뻔한 하루를 조금 늦게나마 시작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은 늘 고통스럽지만, 막상 일어나서 하루를 보내면 정말 행복하다. 문득, 어느 잡지에서 보았던 이외수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났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거예요.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행복해요. 그런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침대에서 벗어나서 책상 앞으로 가는 일이에요. 허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사실을 20대 중반에서야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나보다 빨리 깨달은 사람들은 좀 더 좋아하는 일을 빨리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모르지 않나. 그렇게 하기 싫었던 일 뒤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1시간의 고민 끝에 내린 하루를 쉬겠다는 결단은 결국 10분 만에 번복되었고 결국 다시 떠날 준비를 마친 뒤에 정현이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어젯밤 편하게 쉬어서 그런지 다시 멘 가방의 무게가 조금 낯설었지만, 곧 적응될 무게라는 것을 생각하며 가방끈을 꽉 쥐었다. 자취방에서 출발하기 전 다시 떠나는 나를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쳐다보는 정현이를 꽉 안아주고는 2만원을 용돈으로 줬다. 한사코 거절하는 걸 밥이라도 사먹으라고 억지로 손에 쥐여주고는 한결 가벼워진 몸 상태와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다.



마치 외국 주택단지 같았던 영남대의 풍경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맑다.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영남대를 가로지르는 게 가장 빠르다고 하지만 전국에서 2번째로 면적이 넓은 학교답게 지하철로 가는 길이 꽤나 멀었다. 학교를 가로지르는 데만 20분 이상이 걸리다니… 그래도 쫓기는 일정이 없으니 마음 편히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평지인 데다 녹지가 많아서 마치 영화에 나오는 외국 주택단지를 걷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다 보니 30분을 소비해 지하철에 도착했다. 드디어 경남을 벗어나 경북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설렌다.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없다. 여행 시작 전 교통카드를 만들어 10만 원을 충전해서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여행 중 조금이나마 덜 외롭고 싶어서(?) 구입한 레드벨벳 슬기님의 사진이 담긴 교통카드였다. 아뿔싸! 어제 술 먹고 정현이에게 자랑하다가 책상 위에 그대로 놔두고 온 모양이다.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교통카드를 포기하고 새로 사느냐, 아니면 정현이에게 연락을 하느냐. 그러나 고민도 잠시, 아직 돈이 꽤 남아있는 교통카드를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정현이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전 날까지 계속 학교에서 작업을 한 뒤라 오늘은 밖에 안 나갈 거라던 정현이는 형이 교통카드를 놔두고 갔다는 비보에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와주었다. 30분 전에 아련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던 정현이를 다시 보는 것도 민망했지만 오늘 집에서 쉴 거라고 했던 정현이가 두말하지 않고 뛰어나와 준 건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이왕 씻고 나온 거 학교에 가서 밀린 과제라도 해야겠다며 씩 웃어 보이는 정현이는 내가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영남대 정문에는 그루트가 있더라! 안녕~ 반가웠어



내 실수로 인해 대구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 하광이를 잠시 기다리게 한 나는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뛰었다. 이번에 대구에서 만나는 하광이는 실제로 만나는 것은 두 번째이지만 오래전부터 꾸준히 블로그를 통해 교류하던 친구다. 같은 건축을 전공하고 휴학을 한 나와는 달리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하광이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나도 곧 하게 될 고민을 먼저 겪고 있는 친구를 보며 해답을 줄 수는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하광이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하광이는 한 번에 자신이 가고 싶어 했던 좋은 회사에 합격하게 되지만 이건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다.


짧았던 친구와의 만남을 끝내고 결정의 순간이 왔다. 대구에서 하루를 더 보낼지, 늦게라도 안동으로 넘어가서 하루를 끝낼지에 대한 고민이다. 문득 13년 지기인 상화가 안동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어려서부터 잘 알고 지낸 죽마고우다. 꽤 오랜만에 연락을 하지만, 목소리에 애틋함이라고는 전혀 없다.


“야 상화, 나 안동 갈 것 같은데 너희 집에 가도 되냐?”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일로 올래? 같이 놀고 우리집 가서 자던지.”

“그래, 그럼 나 너 믿고 간다.”


오래된 친구는 구구절절 설명을 안 해도 돼서 좋다. 그렇게 안동역에 떨어지니 저녁 9시가 넘은 늦은 시간. 다시 상화에게 전화하니 주변이 시끌벅적한 게 이미 술자리가 무르익은 것 같다. 지도에 찍어준 장소까지 택시를 타고 내리자마자 보이는 상화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야~ 내가 너를 안동에서 다 본다잉?” 반가운 인사를 뒤로 하고 들어간 가게 안에서 상화는 내 소개에 여념이 없다. “여기는 내가 항상 말했던 진~짜 열심히 사는 친구. 얘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이미 술자리가 꽤나 무르익은 상태였나보다. ‘휴… 오늘 밤은 상당히 길겠구나…’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분 좋게 받아든 술잔에는 이미 소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작가 본계정 인스타 (@smg_dm)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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