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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망 Jul 27. 2023

13. 등산은 하산까지 해야 끝이 난다

소백산

이 이야기는 본인이 2018.09.27~2018.11.02까지 직접 다녀온 전국 배낭여행을 기억하며 쓴 국내 여행 에세이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고 있는 여행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챕터13

#13 등산은 하산까지 해야 끝이 난다


내가 등산을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따르릉… 따르릉…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낡은 모텔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몸을 일으킨다.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어젯밤 늦게까지 뒤척인다고 잠을 못 잤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나는 지금 나름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야기는 여행을 출발하기 전으로 잠시 돌아간다.


한창 여행 계획을 세운다고 책상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날, 아빠가 슬쩍 다가와 여행 계획을 물어보았다. 계획 없이 욕심만 많았던 나는 해남 땅끝마을도 가고 통일 전망대도 볼 것이며, 정동진에서 일출도 보고 전국의 산들도 등반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등반’이라는 두 글자에서 말이다. 산을 좋아하는 아빠와 다르게 아들은 1년에 한 번 뒷산을 오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산을 타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아들이 여행 중에 산을 오른다고 하니 아빠가 코웃음 치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아들은 이미 아빠의 코웃음에 혼자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영주에서 소백산을 가기 위한 노력



그렇게 다시 낡은 모텔 방 안, 정말 수십 번 고민하고 여기까지 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소백산>을 오르기 위해 숙소로 정한 풍기역 앞 낡은 모텔이다. 고작 등산 하나 하는 것이 왜 이렇게 긴장되던지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꾸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여행을 와서도 스스로 몸을 혹사해야 하는가에 관한 물음이었다. 어느 정도 스스로 핑계를 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평소에 오르지도 않는 산을 굳이 지금 이 시기에 올라야 하나라는 생각은 나를 계속해서 불안하게 했고 결국 나를 한숨도 자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미 떠진 눈은 좀처럼 다시 감기지 않았고 침대에서 뒤척거리며 시간을 까먹다가 마음을 다잡고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생각이 너무 길어지면 행동하지 않게 되고, 결국 그대로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 덕분에 잘 알고 있다. 이럴 때는 일단 순서대로 차근차근해보는 게 최선이다.



새벽 등산 전, 든든하게 먹었던 아침



찬물로 샤워를 했더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다음 단계로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온 뒤 어젯밤 미리 알아놨던 이른 시간에도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정갈하게 차려진 청국장 정식을 먹으니 정신이 돌아오며 힘이 났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늦지 않게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도착한 버스에 앉아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쐬니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창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괜히 후, 하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태양은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등산 시작점은 삼가주차장.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가족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평화롭게 산책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냥 편하게 천천히 오르면 된다. 별거 아니다.



등산 시작 30분, 벌써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젠장,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걸은지 30분도 안 되어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두통의 원인은 분명히 어젯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서 나온 피로와 스트레스임에 분명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나와 같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고, 산을 오르는 도중에 [위험,멧돼지 출몰지역]과 같은 경고 표지판은 혹여 저 빽빽한 나무 숲 사이에서 갑자기 멧돼지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나를 한껏 긴장하게 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1시간여, 이미 정상을 보고 내려오시는 어르신들은 나를 보고는 “역시 젊음이 좋긴 좋아.”라며 지나치셨다. 내 모습이 등산에 적합한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바지에 맨투맨, 허리에는 작은 힙색 하나,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500ml 생수 2병과 초콜릿 2개뿐. 무식하니 용감하다 했던가. 정말 어르신들 말씀대로 젊음 하나 믿고 덤벼든 꼴이다. 그러나 가끔은 너무 타이밍만 재고 기다리기보다 아무것도 모를 때 겁 없이 도전해볼 필요도 있는 거다.


그런 순간이 있다. 바삐 움직이던 내 머리가 잠시 멈추고 오로지 내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 이제 들리는 소리는 내 숨소리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들리는 발소리 밖에 없다. 한참을 땅을 보며 걷다가 문득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싶어 고개를 들어 목적지를 바라봤지만, 나무가 우거져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추측하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한 결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는 오를 곳이 없고 모든 것이 내 아래에 있다. 그제야 올라왔던 길을 한번 되돌아봤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정상까지 거리를 정확하게 알고 걸었다면 과연 도착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목적지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무작정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를 정상에 오를 수 있게 한 것은 아닐까? 목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산을 오르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정상에 도착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가지고 온 초콜릿과 물로 배를 채우니 땀이 식어 몸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이대로 있다가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얼른 하산길을 찾았다. 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가도 되지만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 싶어져서 잠시 고민하다 <희방폭포>를 볼 수 있다는 하산길을 택하고 바로 출발했다.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얼른 하산길에 올랐다



…뭔가 잘못됐다. 20분여를 내려가더니 갑자기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아니 여기 하산길 아니야? 왜 다시 올라가는 거야?’라는 생각도 잠시,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고… 연화봉이라고 적힌 비석을 발견했다. 아하… 여기는 소백산의 또 다른 봉우리였다. 그래, 어짜피 이렇게 된 것 끝까지 가보자며 마음을 잡고 기운차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나를 지나쳐 올라가는 한 커플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 여기 길 너무 험하네.” “우리 내려갈 때는 다른 길로 내려가자.”…젠장.



하산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봉우리로 가는 길이었다...



하산길을 너무 우습게 봤던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산은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 급한 경사를 내려가기 위해 단단히 긴장하고 있는 허벅지와 중력과 가속도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는 무릎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보다 더 심하게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심지어 에너지를 채워줄 초콜릿이나 물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탈진한 상태로 도저히 한 걸음도 더 걷지 못할 것 같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까 분명히 식량을 다 먹은 것을 알면서도 가방에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뒤적거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가방 앞주머니에 지난번 울산에서 헌혈을 하고 받았던 초콜릿이 남아 있던 것이 아닌가! (7. 내가 상상하던 공간에 발을 들이면, 에피소드 참조) 서둘러 초콜릿을 입에 넣고 온몸으로 당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그 당연한 가르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초콜릿으로 힘을 얻어 하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봤더니 나의 하산길을 선택하게 만든 원흉(?)이었던 희방폭포가 보였다. 사실 희방폭포의 실물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하산길에 희방폭포를 지나쳤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사진첩에 석 장의 희방폭포 사진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사진은 찍어야 한다 싶었나 보다.



애증의 희방폭포... 사실 실물이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그 이후로는 산을 어떻게 내려와서 숙소에 도착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거의 기다시피 내려와 도착한 주차장에서 20분은 더 걸어가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는 소리를 듣고 핸드폰을 꺼내 콜택시를 불렀던 것이 남아있는 몇 안되는 기억의 파편이다. 택시를 타고 근처에 있는 숙소로 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침대에 눕고 나서야 생각했다. “아… 산은 하산까지 완료해야 끝이 나는 거구나… 역시 모든 일은 마무리가 중요ㅎㅏ… Zzz…” ✈




전국 30개의 도시, 100여개의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국내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제의 및 협업 요청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작가 메일 : audrhkd0@gmail.com

작가 본계정 인스타 (@storyfarmer_dumang)

쪼렙여행자 인스타 (@jjolevel_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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