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1948년생으로 태어난 지 2년 만에 6.25를 겪었다. 20대에는 베트남 전에 참전했고, 경제 개발 계획에 따른 건설업 부흥시기에는 중장비 기사로 일했다. 전국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러 가서 우리 가족은 방학이면 달셋방을 얻어 살았다. 아빠는 IMF때 오랜 기간 몰던 용달을 처분하고 다른 회사원들처럼 실직 상태로 지냈다. 몇 년 후 다시 택시 운전대를 잡았고 그렇게 고군분투하다 62세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가난한 집 9남매 맏이로 태어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고 전국을 누빈 아버지의 삶은 우리 근현대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런 우리 아버지 세대를 기리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빠가 생각났다. 이산가족까진 아니었지만 어린 나이에 겪어서 기억에 없는 전쟁이지만 우리 아빠도 저랬는데 싶었다. 특히 베트남전 참전 장면에서 울컥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6.25 전쟁을 그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고진전> 등이 있고, 베트남 전쟁을 그린 영화 <하얀전쟁>, <알포인트> 등이 있다. 이처럼 전쟁에 나간 아버지, 대한의 아들을 기리는 영화는 많은 데 당시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 세대를 기리는 영화는 왜 없을까?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6.25에 참전 했을 5살, 3살, 이제 돌이 안 된 아들 이렇게 3명의 아이를 혼자 키우며 전쟁 시기를 보냈다. 우리 아빠가 9남매 맏이인데 당시 3살이었고 위로 큰 고모와 아래 작은 아빠가 전쟁시기에 할머니 곁에 있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살아오셔서 다행이었지만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논밭 땅뙈기 하나 없는 집에서 할머니는 어떻게 어린 자녀를 건사하며 살았을까? 우리 엄마는 아빠가 베트남전에 참전하던 때에 큰 오빠 밥해주러 서울에 상경했다. 결혼 후에도 마사지사부터 출판사 영업직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엄마는 늘 일하고 밥도 했다. 이런 우리 할머니, 엄마가 주인공이 영화는 없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았는 지는 배우지만 생계를 꾸리면서 가정을 지킨 어머니의 역사는 모른다. 근현대사 사건 속 주인공은 아버지들 뿐이다. 사건의 배경에 있는 인물들의 역사는 기억되지 않는다. <국제시장> 영화에서도 주인공 덕수의 아내인 파독 간호사 영자, 덕수 고모, 덕수의 영동생 끝순이는 덕수가 책임지고 부양해야 할 가족으로 나올 뿐이다. 실질적으로 전쟁, 경제개발시대, IMF시대에 엄마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바깥일에 집안일 까지 둘 다 해냈음에도 늘 부양받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림책 <막두>는 부양받는 존재였던, 근현대사에서 이야기 되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 세대를 주인공 자리로 끌고 온다. 그녀들도 역사의 주인공이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국제시장>의 덕수가 6.25 전쟁 피란 시 이산가족이 되면서 인생의 비극이 시작되고 장남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처럼 그림책 <막두>도 같은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빨간 점퍼의 모자를 둘러쓰고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도미로 추정되는 생선을 들고 노란 비닐 앞치마를 한 채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막두 할머니. 짙은 눈썹과 모자 사이로 삐져 나온 뽀글이 파마, 발갛게 상기된 볼이 세상 풍파쯤 올테면 와 보라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부산 자갈치 시장 한쪽에 좌판을 벌이고 생선을 파는 막두 할매는 도미 별로라고 타박하며 값을 깎으려는 손님에게 “아이고~ 당신보다 싱싱하요!”라고 받아치는 입담 좋은 할매다. 속여가며 장사한 적 없다고 도미 누르지 마라며 손님에게 되레 뭐라하는 할매에게 이웃 장사 할매들이 불뚝스러워서 장사하겠냐며 막걸리를 따라준다.
손님에게 불뚝스럽게 대하는 입담 쎈 막두할매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단골에게는 도미를 그냥 공짜로 준다.
자갈치 시장 좌판에서 생선 냄새 베이는 작업복으로 할매들이 전부 어두운 옷을 입고 있는데 어느 날 커피 파는 아지매가 노란 꽃무늬 일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막두 할매는 예의 입담으로 궁디에서 꽃 튀어나올라칸다며 면박을 준다.
막두 할매는 본시 고향이 이곳이 아니다. 할매 열 살 때 6.25 전쟁이 나고 피란 길에 식구들을 잃어버렸다. 기차 안에서 엄마가 가족을 잃어버리면 부산 영도 다리 앞에서 만나자고 했던 걸 기억한 막두는 걷고 걸어서 영도 다리 앞에 도착했다. 피란온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룬 다리 위에서 갑자기 ‘땡땡땡’ 종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한쪽으로 물러나고 ‘그그그그그’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다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벽, 괴물, 막두의 앞길을 가로 막는 영도 다리 앞에서 막두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한 막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영도다리가 보이는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팔기 시작했다. 텃세 부리는 아줌마들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시시때때로 올라가던 영도다리, 심장이 멎는 것 같아 쳐다 볼 수 없던 영도다리도 어느 덧 올라가는 일을 멈췄다. 막두도 아지매에서 할매로 변했다.
글고 어느 날, 영도다리가 다시 개통된다는 소식을 접한 막두 할매는 영도 다리 앞으로 갔다. 이전과 달리 똑바로 눈을 뜬채 다리를 마주하는 막두 할매는 자신의 삶도 저 다리 만치 대단하다며 마음 속 오마니, 아바지에게 이야기 한다. 그리곤 오늘도 자갈치 시장으로 도미 팔러 간다. 커피 아지매처럼 화려한 노란 일바지를 입고 간다.
정겨운 부산 사투리가 막두 할매의 투박하고 털털한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그림책 <막두>는 정희선 작가가 자갈치 시장에서 인터뷰한 할머니들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거칠게 칠한 듯한 그림은 어린 나이에 혼자 되어 전쟁같은 시장 통속에서 삶을 이어온 막두 할머니의 세상의 모진 풍랑을 거친 삶을 보여준다.
이 그림책 속 백미는 영도 다리가 올라가는 장면이다. 막두할매의 어린 시절 과거를 회상할 때 흑백으로 처리된 그림 속에서 막두만 빨간 옷을 입고 있다. 시장에서 빨간 옷을 입고 있는 할매와 이어지는 빨간 색이다. 막두를 제외한 모든 색이 사라지고 눈마저 흑백으로 보이는 회상장면에서 가족을 잃어 버린 것과 동시 빛을 잃고 방황하는 막두가 보인다. ‘그그그그’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영도다리, 그 다리를 마주한 막두와 같은 시선에서 독자는 그림을 보게 된다. 마치 독자가 막두가 된 듯 그림책 양면 가득 영도 다리가 올라와 시야를 막는다. 10살 어린 막두 인생이 암담하다는 걸 독자가 체험하게 하는 장면이다.
막두는 천애 고아로 혼자가 됐지만 자갈치 시장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기다리며 삶을 이어간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책의 마지막 영도다리 개통소식을 티비 뉴스로 확인하는 막두 할매 방안 장면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벽을 가득 메운 자녀들 사진을 보면 학사모를 쓴 자녀도 3명이나 되고 손자, 손녀로 보이는 아이들 사진도 있다. 한 때 부의 상징이었던 자개장도 막두 할매 뒤에 자리 잡고 있다. 홀로 일군 부와 가족들이 있는 막두 할매의 방, 영도 다리를 당당히 마주하는 할매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운 그림. 우리 할매도 아닌데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도미보다 더 싱싱한 목소리로 자갈치 시장의 하루를 여는 막두 할매 이야기에는 할매가 살아온 긴 시간동안 있었던 우리나라 근현대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 시대 500년 동안 태정태세문단세의 왕들만 살았던 게 아니라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백성들이 살았던 것처럼 근현대사와 영화가 기록하지 않지만 막두 할매와 같은 많은 어머니들의 삶이 역사에 실재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림책 <막두>에는 나의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