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안경>
밤식빵 그걸 왜 버리냐구!!
<빨간 안경>
“빵을 냉동실에 왜 넣어. 그냥 다 먹어야지.”
“식빵을 어떻게 다 먹어. 남으면 냉동 보관해 두고 먹는 거지.”
“떡도 아니고, 빵을 왜 냉동해. 다 버려.”
얼음을 꺼내다가 고춧가루가 쏟아졌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씩씩거리며 냉동실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말린 표고버섯, 들깨가루, 고춧가루, 들기름, 참기름, 찰떡, 쑥절편, 크로와상 생지, 식빵, 밤식빵까지—먹을거리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얼마 전, 찾다 포기했던 또띠아 한 장도 그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버리지 마. 다 먹는 거야. 표고버섯은 창원 어머님이 직접 말려서 보내주신 거고, 빵도 다 먹을 거야.”
그렇게 말해두고 집을 나섰습니다. 얼음에 고춧가루가 묻게 한 건 미안하지만, 냉동실 정리하라고 하면 될 일을 굳이 보란 듯 꺼내놓고 구시렁거리며 정리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습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야외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상황은 종료된 뒤였습니다. 오기가 생겨 저녁 준비를 하면서 냉동실 문은 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재운 뒤, 다음 날 아침 국을 끓이려고 냉동실을 열었습니다. 안이 휑했습니다. 수납칸은 질서 있게 정리돼 있었고, 수산물, 육류에는 각각 이름표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호오, 제법인데. 그런데… 밤식빵, 밤식빵 어디 갔지?’
밤식빵을 비롯해 생지와 냉동 빵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편에게 묻자, 담담하게 “버렸다”고 합니다.
남편이 버린 그 밤식빵을 말할 것 같으면 말이죠. 별스타그램에서 ‘빵 성지’로 통하는 집에서 어렵게 구매한 빵입니다. 예고 없이 올라오는 판매 공지를 보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광클릭을 해야만 살 수 있는, 15,000원짜리 식빵이란 말입니다. 한 번은 클릭 실패로 좌절했고, 두 번째 시도 끝에 간신히 ‘겟’한 빵이었습니다. 냉동 상태로 배송되어 온 것을 소중히 냉동실에 모셔 두었는데, 그걸 버렸다니. 분명히 ‘버리지 말라’고 했는데도 버렸습니다.
발바닥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남편이 수집한 게임 캐릭터 인형들을 끌어와 던졌습니다. 집에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박스채 구석에 쳐박혀 있는 것들, 이사할 때마다 박스째 챙기는 그것들, 이참에 다 버리겠다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남편은 먹다 남은 건 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냉동실에 들어가 봤자 결국 안 먹게 되고, 자리만 차지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전적이 있으니 말문이 막히긴 했지만, 빵만큼은 아니지 않습니까. 식빵 한 봉지를 혼자 다 먹기는 어렵고, 남은 건 냉동해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먹는 게 저의 방식입니다.
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가 아끼는 물건으로 상처를 주고받았기에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넘게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닫고 지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딪힐 일이 없어 오히려 평온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부사이 기류만 서늘했을 뿐 일상은 비교적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잠자리 책으로 <빨간 안경>을 가져왔습니다. 빨간 안경을 쓰고 보면 책의 내용이 다르게 보이는 그림책으로, 아이는 이 책을 신기해하며 좋아했습니다. 이전에도 자주 읽었지만, ‘빵 사건’ 이후 읽으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날, 파란 늑대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붉게 물들었고, 어항엔 물고기가 사라졌으며, 식탁 위 음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 자신은 잿빛 털로 덮여 있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리고, 주황 늑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파란 늑대는 반가워 달려 나갔지만, 문 앞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파란 늑대는 우산을 챙겨 주황 늑대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나 여기 있잖아. 그리고 우산은 왜 써?”
주황 늑대가 말했지만, 파란 늑대는 그 목소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비는 보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고, 땅은 흙탕물뿐이었습니다. 겨우 도착한 주황 늑대의 집에서, 파란 늑대는 이 모든게 장난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주황 늑대의 품에 안겼습니다. 파란 늑대는 주황 늑대가 비록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응, 나예요. 당신이 날 보지 못해도,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이상 빨간안경 줄거리)
<빨간 안경>은 책 앞에 동봉된 빨강 셀로판 안경을 쓰고 읽은 후, 벗고 다시 읽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안경을 쓴 시점은 파란 늑대의 관점, 벗고 읽는 시점은 주황 늑대의 관점입니다.
파란 늑대는 복면을 쓴 늑대로 인해 강제로 안경을 쓰게 됩니다. 이후 세상은 빨간 안경을 통해서 보입니다. 주황 물고기가 사라지고, 우산엔 구멍이 나고, 주황 늑대 모습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리는 그 낯선 세계는 결국 파란 늑대의 눈에 비친 불완전한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봅니다. 살아온 환경, 성격, 가치관에 따라 같은 일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컵에 물이 반 남았을 때, 어떤 이는 “반이나 남았네”라 하고, 어떤 이는 “반밖에 없네”라 합니다. 흔한 예지만, 중요한 건 낙관과 비관의 구분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라는 점입니다.
결혼은 파란 안경을 쓴 이와 빨간 안경을 쓴 이의 만남입니다. 각자가 옳다고 믿는 색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다름을 다툼으로 바꿔버리는 일이 반복됩니다.
남편은 빵은 냉동 보관해도 결국 안 먹는다’는 안경을 쓰고 있고, 저는 ‘빵은 냉동보관해서 먹어도 된다’는 안경을 쓰고 있는 거죠. 남편의 안경을 확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아이와 함께 읽은 <빨간 안경> 덕분에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도, 저도, 각자의 안경을 쓰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책 마지막에서 파란 늑대가 잠자리에 들 때, 빨간 안경이 옆에 놓여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자각하지 못했던 빨간 안경을 벗어 놓은 것입니다. 파란 늑대가 안경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은 주황 늑대의 포옹 때문입니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불완전하게 보는 파란 늑대를 수용해준 주황 늑대의 포옹이요.
30년 넘게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개인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공동생활을 하는 부부는 서로의 안경을 벗겨내기 위해 혈투를 벌입니다. 옛 이야기에서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못 벗겼듯이, 싸움은 안경을 벗길 수 없습니다.
다음 날, 남편 퇴근 전에 게임 캐릭터들을 현관문 앞에 정렬해 두었습니다 (이럴 줄 알고 새 쓰레기 봉투에 담아 두었나 봅니다. 실은 저도 버리긴 아까웠던 듯합니다). 저 나름대로 내민 화해의 손길이었는데, 남편이 보지도 않고 지나쳤습니다.
‘쳇, 이렇게 나오시겠다.’
다시 한 번 삐쳤습니다.
다음 날 문자가 왔습니다.
"OO택배입니다. 주문하신 택배가 오늘 2시~5시 사이 도착합니다."
최근 주문한 게 없어서 뭔가 싶으면서도, 제가 또 뭘 주문했나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외출 후 들어올 때 보니 문 앞에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습니다. 창원에 계신 어머님도 별 말씀이 없으셨는데, 반찬이나 채소를 보내셨나 하고 가지고 들어와 열었더니 밤식빵이었습니다.
서로 달라서 앞으로도 종종 다투겠지만, 주황 늑대가 파란 늑대를 안아주며 "걱정 말라고, 난 늘 네 곁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파란 늑대와 주황 늑대가 서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쓰고 있는 안경도 언젠가 벗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