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한 접시만 안 닦은 남편?
<bag head>
일요일,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외출했습니다. 볼 일을 보고 집에 오니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 있었습니다. 평상시 나도 설거지를 미루는 편이라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이를 재우러 가는 길에 거실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했습니다. 본인이 먹은 그릇이어서 그랬는지 저항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 가서 아침 준비를 했습니다. 안방문에서 바라본 싱크대는 그릇 더미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미소를 머금고 싱크대 앞에 섰는데, 이럴 수가. 전날 아이와 내가 먹은 과일 접시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먹은 거라고 이것만 남긴 거야?’
배꼽 아래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치솟았습니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서 따지고 싶었습니다.
‘당신 말이야, 본인이 먹은 그릇 아니라고 이것만 남긴 거야? 사람이 어쩜 그렇게 쪼잔하고 이기적일 수가 있냐? 자기가 번 돈은 왜 가져다 준대? 그렇게 니거 내거 따질 거면 앞으로 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기댈 생각 하지 마. 6시에 돌봄노동 퇴근할 거니까 나만 야근시키지 말고 6시 이후 육아는 요일마다 번갈아가면서 해. 또 가사는 세분해서 월별로 교대해. 이번 달 내가 음식물 쓰레기 했으면 다음 달 음식물 쓰레기 당번은 자기야.’
생각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고, 억눌려 있던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불편한 마음까지 올라왔습니다. 과일 접시 하나에 그동안의 불만이 시루떡처럼 쌓여갔습니다. 더 이상 쌓을 곳도 없을 만큼 화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아이가 깼습니다. 아침 시간, 안 그래도 바쁜데 따져봤자 서로 기분만 상하고 속상한 내 감정은 전달도 안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릇 하나에 짜증을 내는 제가 잘못한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보전진을 위해 일보후퇴했습니다.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머리를 굴렸습니다. '이걸 어떻게 되갚아 줄까... 남편 빨래를 안 해줄까? 밥도 안 해주고 철저히 소외시켜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쏟아내 복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카톡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했습니다.
그날 오후,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습니다. 느티나무 도서관장 박영숙 님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 집도 놀기 전에 그림책을 읽는 게 규칙입니다. 한글 책 1권, 영어 책 1권을 읽는데 이날 읽은 영어책은 <백헤드(baghead)>였습니다.
조는 수요일 아침,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엄청 대단하고 멋진 아이디어였는데, 그건 마트에서 주는 종이봉투로 만든 종이가면이었습니다. 눈과 입만 뚫어 얼굴에 종이봉투를 헬멧처럼 덮어쓴 조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엄마는 "그런 얼굴로 어떻게 밥을 먹냐?"며 나무랐습니다. 하지만 조는 에그스크램블을 흘리거나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스쿨버스에서는 운전기사가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학교에 가냐고 말했습니다만, 조는 아무 일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에 갔습니다. 버스에 탄 아이들 중 조를 놀리거나 뭐라 하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종이봉투를 쓴 조를 보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숙제를 해왔냐고 물었습니다. 조는 숙제도 해왔고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채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잘 했습니다. 축구 코치는 종이봉투를 쓴 조에게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축구를 하냐고 했지만, 조는 축구는 발로 하는 거라며 응수했습니다. 심지어 골을 세 개나 넣었습니다.
조를 데리러 온 아빠는 오늘이 학교에서 그런 이상한 모자를 쓰는 날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아빠도, 엄마도, 형도 조의 종이봉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의 여동생만이 조에게 물었습니다.
"오빠, 왜 종이봉투를 쓰고 있어?"
그러자 조가 봉투를 벗으며 대답했습니다.
"아침에 혼자 앞머리를 자르다가 실수를 했거든."
종이봉투를 벗은 조의 앞머리는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목요일 아침, 조의 여동생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여동생은 조의 머리를 헤어젤로 모두 올려 세웠습니다. 조는 더 이상 삐뚤어진 머리 때문에 종이봉투를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손잡이가 없는 종이봉투를 사용하는 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종이봉투에 구멍을 내고 뒤집어쓰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없는 <baghead>는 이런 아이들의 재밌는 장난을 이용해 다른 이에 대한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조가 종이봉투를 쓴 행동의 결과만 보고 그건 안 좋은 행동이라 판단하고 "밥을 먹을 수 있겠냐, 축구를 할 수 있겠냐"며 조언하지만 실패합니다. 그것은 염려를 가장한 종이봉투를 벗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조의 행동 결과를 수정하려는 어른들의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동생은 조의 행동이 아닌 이유를 궁금해 했습니다. 조가 종이봉투를 쓴 마음을 물어본 것입니다. 조가 종이봉투를 벗는 일은 여동생의 물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책장을 덮지 못하고 여동생이 조에게 질문하는 장면을 다시 펼쳤습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오빠에게 질문하는 여동생을 보면서 이따 밤에 남편에게 '왜 그릇을 남겼는지 물어나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재운 뒤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며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설거지할 때 과일 접시는 왜 남겼어?"
‘당연히 자기가 안 먹은 거라서 남겼다고 하겠지?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얌체라고 말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적절한 지적과 조언을 하면서 내 마음도 시원할까?’ 생각했습니다.
"세제가 모자랐어."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맨 아래 깔려 있던 과일 접시를 닦으려니 세제가 모자랐다고 합니다. 마침 세제가 똑 떨어졌다고 합니다.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서 종일 안절부절 못했던 게 허무해 웃음이 났습니다.
이기적인 남편의 행동을 어떻게 고칠지, 고상하고 교양 있는 답변을 고르느라 애썼던 그 아까운 시간들. 남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보지 않고, 얌체라고 판단하고 화를 냈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현상이나 타인을 보고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선입견과 판단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 했던 이 교훈을 몸소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운전기사와 축구코치가 남자가 아닌 여자로 나오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어서 더 좋은 그림책 <baghead>가 우리 부부에게 평화를 선물했습니다. 앞으로는 여분 세제를 꼭 구비해 두어야겠습니다.